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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지난달 부산시는 올해부터 열릴 부산형 융복합 전시컨벤션 이벤트 ‘옥토버 부산페스티벌’(가칭)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페스티벌 참여 기관들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제각각의 일정으로 열렸던 부산 대표 행사를 10월 초에 한데 뭉쳐놓음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취지다. 이른바 ‘집적효과’다.
옥토버 페스티벌에 참여할 ‘옥토버 어벤져스’에는 △플라이 아시아창업엑스포 △부산디자인페스티벌 △부산국제영화제 △데이터 글로벌 해커톤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 △국제록페스티벌 △국제음식박람회&마리나셰프챌린지 △수제맥주페스티벌 △2024부산원먼스페스티벌 등이 포함됐다. 행사는 대체로 9월 30일~10월 6일 일주일 중에 몰려있고, 부산국제영화제처럼 큰 행사(행사 기간만 열흘이다)는 10월 11일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행사는 뭉쳐놨는데 정작 사람은 행사만큼 뭉쳐지지 못한 것 같다. 지역 문화계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행사의 경우 큰 행사의 덕을 볼지 아니면 큰 행사에 묻혀버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대체로 부산시로부터 지원을 받아 살림을 꾸리는 기관·단체들로선 시의 ‘헤쳐모여’ 명령을 거부하기도 힘들다. 올해 행사를 예년 대비 몇 달 미뤄 치르게 된 A 단체 관계자는 “시의 방침에 따라 일정을 바꾸긴 했지만, 국제영화제나 국제공연예술마켓과 같은 큰 행사에 밀려 사람들의 관심이나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뭉쳐진) 행사들의 성격이 제각각이라 관객층이 겹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변명도 들려온다. 충성도 높은 관객만 취하겠다는 의도처럼 들려 다소 거슬린다. 영화광들은 영화만 볼 것이고, “Rock Will Never Die”(록은 영원하다)를 외치는 이들은 록페스티벌만 찾을 거라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평소 영화에 관심이 적은 사람도, 록을 잘 듣지 않던 사람도, 축제를 계기로 좀 더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고 록을 즐겼으면 좋겠다. 그것 또한 축제의 역할 중 하나일 테다. 그렇다면 관객층은 분명 겹친다. 관객층뿐 아니라 겹치는 것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숙박 인프라다. 예년에도 국제영화제나 불꽃축제 같은 큰 행사가 열리면 인근 숙박 시설이 부족해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올해는 벌써부터 ‘10월 초 숙박대란’에 대한 흉흉(?)한 소문마저 돈다.
물론 어떤 변화이든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기 마련이다. 너무 우려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변화의 시도조차 어려워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누가 확신할 수 있나. 문화계가 가진 우려들은 대부분 기우에 그칠 뿐이고, 부산시가 기대하는 집적효과가 더 클 수도 있다. 무사안일주의보다는, 시도를 거듭하며 수정해 나가는 것이 낫다.
그렇게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너그러운(?) 시선으로도, 단 한 가지만큼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오는 8·9일로 예정된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에 관한 것이다. 올해로 8회째를 맞는 원아시아페스티벌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10월에 열렸던 행사다. 지난 2월 말 부산시는 올해 행사를 6월로 앞당기면서 그 이유로 “10월엔 국제영화제, 불꽃축제 등이 몰려있어 ‘원아페’ 관객들의 항공권·숙소 예매가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일정을 변경하게 됐다”고 했다. 게다가 “일정을 옮김으로써 상대적으로 관광객이 덜한 6월에도 ‘원아페’를 보러 모인 관광객으로 부산이 북적일 것”이라는 기대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분산효과’다.
혼란스럽다. 홍상수 감독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가 떠오른다. 불과 몇 달 전에는 10월에 겹친 행사를 헤쳐 놓더니, 이제는 다시 10월로 행사를 모은다. 그때는 틀렸던 것이 지금은 맞다? 기자의 짧은 생각으로는, ‘옥토버 페스티벌’에 대한 검토가 한두 달 새 급하게 이뤄졌거나(실제로 부산시가 ‘옥토버 페스티벌’의 모델이라는 미국의 모 축제를 견학한 것은 불과 지난 3월의 일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원칙이나 철학 없이 순간순간의 직관으로 일 처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입장이 바뀔 순 있다. 다만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하고, 입장을 바꾼 이유도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부산시는 대충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한다.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잘못한 사람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대체거래소(ATS)만 해도 그렇다. 그렇게 설립 반대만 외치더니, 언젠가부터 슬그머니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을 바꾼다. 이대로라면 시민들이 비싼 돈을 들여 총명탕이라도 먹어가며 기억을 ‘총명’하게 해야 할 판이다. 부산시가 지금은 ‘맞다’고 한 것을 언제 또 은근슬쩍 ‘틀렸다’고 말바꿈 할 지 몰라서다.
2024-06-0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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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구직할시와 ‘꾀끼깡꼴끈’ 부산
“저 높은 아파트는 언제 텅 비게 될까요.” 부산에 사는 한 중학생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말뜻을 종잡을 수 없어 물었다. “바닷가 좋은 아파트가 왜 비어. 사람들이 잘 살고 있는데.” 어른의 놀란 표정에 아랑곳없이 중학생은 태연하게 답했다. “언젠가는 다들 서울 가서 사는 시대가 온대요. 그러면 부산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이 된다는데요. 학교 친구들도 다 그래요.”
바로 며칠 전 나눈 대화다. 불과 열다섯 살의 부산 청소년이 언젠간 서울로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니. 일하고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주변 친구들도 다 그렇게 알고 있다고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숨김없는 부산 청소년의 현실 인식이다.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도 바다가 있는 부산이 좋지 않으냐며 나는 말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곤 몹시 부끄러워졌다.
통계청이 지난해 말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50년 부산 인구는 251만 명으로 줄어든다. 올해 334만 명인 인구가 26년 후엔 80만 명 넘게 감소하게 된다는 예측이다. 다른 연구 자료를 보면 부산·울산·경남 인구는 현재 780만 명에서 2100년이 되면 318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에서 부산의 존재는 미미해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여러 과학적 추산을 살펴보면 부산이 거의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 부산 청소년 인식은 조금 성급한 면이 있긴 하지만, 상당히 ‘미래 예측적’인 것만은 틀림없다.
‘부산 소멸’이란 고민에 한동안 압도된 사이 문득 ‘대구직할시’ 소식이 들려왔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18일 대구·경북을 합쳐 인구 500만 명 규모의 ‘한반도 제2의 도시’를 만들자고 치고 나온 것이다. 당장 2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을 합쳐 대구직할시장 1명만 선출하자고 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즉각 맞장구쳤다. 이 지사는 이튿날 “수도권 일극 체제로는 저출생·지방소멸 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대구직할시 방안에 동의했다.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이 제대로 한 방 먹은 분위기다. 입으로만 ‘수도권 일극 체제에 맞대응하는 남부권 중심축’을 외치던 부산은 더욱 야단났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국가 핵심 지역 어젠다의 주도권을 홍 시장과 대구·경북에게 빼앗긴 형국이어서다. 그것도 박형준 부산시장의 일주일 유럽 출장과 맞물린 기습이니, 부산시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꼴이다.
부울경 광역지자체가 추진해 온 초광역 메가시티는 흐지부지 물거품이 됐다. 정작 메가시티 깃발을 가장 먼저 든 부울경이 지금은 대열에서 가장 뒤처지는 모습이다. 최근 대구·경북이 크게 불을 지폈지만, 대전·세종·충남·충북 4개 광역 시·도는 ‘충청지방정부연합’이란 명칭으로 충청권 메가시티를 더욱 구체화하는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감소에 따라 ‘정해진 미래’가 있다면, 우리에게 메가시티는 ‘피할 수 없는 미래’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 보자. 국토교통부 한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부산과 같은 지방 거점도시에 예산을 집중 투자하는 방식이 우리나라 인구 감소에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이다. 연구 결과 부울경에 재정을 투입하지 않으면 2100년 인구는 318만 명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부산을 중심으로 한 거점도시에 집중 투자할 경우 2100년 부울경 인구는 459만 명이 될 수도 있다고 예측된다. 이 재정을 국내 226개 기초자치단체에 고르게 배분해 투자하면 효과가 훨씬 떨어진다.
부울경이 이런 논리를 몰라서 머뭇거리는 건 아니다. 수도권에 맞대응할 수 있는 지방 중심축으론 부울경이 가장 걸맞다. 800만 명에 육박하는 인구와 산업 규모 등 외형으로 보면 수도권에 이은 국내 2위 권역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여유 부리는 틈을 타 더 절박한 지역들이 앞질러 나간다. 2위의 여유는 도태로 이어질 수 있다. 각 지역이 주도권을 놓고 다퉈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가야 할 길이 맞다면 온 지역이 함께 더욱 옳은 방향을 모색하자는 뜻이다.
박 시장이 유럽 출장으로 최근 자리를 비운 사이 번영로 터널 입구에 나붙은 괴문구 ‘꾀·끼·깡·꼴·끈’으로 큰 소동이 빚어졌다. 2030 월드엑스포 유치 참패로 가뜩이나 힘든 부산시민을 더 심란하게 만든 전국적 소란이었다. 박 시장은 올해 시무식에서 언급한 덕목대로 꾀(지혜), 끼(재능), 깡(용기), 꼴(디자인), 끈(네트워킹)을 다해 메가시티 정책을 보다 면밀히 검토해 부산이 가야 할 길을 더욱 뚜렷하게 제시해야 한다. 여러모로 어수선해진 부산시민의 마음을 보듬어야 할 때다.
2024-05-2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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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4·10 총선’의 숨은 패자, 지방
정부를 견제하면서 입법을 맡을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은 지방선거와 달리 지방민과 큰 상관이 없는 선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실제 지역의 미래와 살림살이를 좌우할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부산의 예만 들어도 알 수 있다. 20년 넘게 지역민들이 간절히 바라마지 않던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은 국회가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허락’한 덕분에 첫 삽을 떴다.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도 지역 역량과 처지는 아랑곳없이 330만 시민을 대표하는 부산시장이 국회에 올라가 불과 십수만 표를 얻은 더불어민주당 실력자 한 명 한 명을 찾아다니며 머리를 조아려야 풀릴까 말까 한 문제다. 그럼에도 산은 이전의 핵심 키인 ‘산업은행법’ 개정 여부는 안갯속이다. 정치에서 중앙과 지방은 별개 영역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4·10 총선’에서 드러나지 않은 패자 중 한 영역은 지방이다. 중앙에 예속돼 있는 지방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 정치 이벤트였다는 의미다. 이번 선거는 2020년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후 처음 치러진 총선이다. 1인 1표제 하에 선거는 인구가 더 많은 쪽 이해관계를 좇는다. 향후 선거에서도 지방분권·균형발전은 수도권 이해가 걸린 문제에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의제다.
야야 중앙당 모두 이번 총선에서 지방분권·균형발전 공약을 외면했다. 거대 양당은 선언적인 슬로건만 내세웠을 뿐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등 현재진행형 공약만 보여주기 식으로 내세웠다. 지방이 기대를 걸던 메가시티론은 ‘메가 서울’로 변질돼 수도권 위성도시 표심을 유혹하는 소재로 다뤄지는 촌극도 벌어졌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필요한 권한과 재정 이양·분산 문제는 아예 다뤄지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 등을 통해 목소리를 냈지만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묻혔다.
오히려 총선 기간엔 ‘지방의 굴욕’이 이어졌다. 여야 할 것 없이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지방 대변자 역할을 할 여러 정치인이 총선 예선과 본선을 거치며 힘도 써보지 못한 채 무너졌다. 부산에서도 부산 해운대구청장을 시작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뒤 6선 고지를 노리던 서병수 의원이 정치 뒤안길로 물러날 처지다. 부산시의원 이력으로 21대 국회에 입성했던 이주환·전봉민 의원도 다시 무관으로 돌아간다.
최인호·박재호 의원의 3선 실패는 두고 두고 아쉬울 일이다. 두 사람은 때론 중앙당 방침을 벗어나면서까지 고비마다 부산 현안 해결에 앞장섰다. 최 의원은 21대 국회의원 임기를 마무리 짓는 와중에 가덕신공항 조기개항 필요성을 논하는 토론회를 연다고 한다. 지방의회나 지자체에서 활약하다 국회 입성으로 체급을 올리려던 여러 인물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최형욱 서은숙 이현 정명희 홍순헌 박인영 변성완 노정현 등이다. 본선 진출에 실패한 부산 정치인도 적지 않다. 중앙 정치가 모든 권한을 움켜쥔 상황에서 다른 지방이라고 다를까.
여야 중앙당은 그 자리에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정치인을 내려꽂았다. 이번 총선 당선인 가운데 20년 넘게 부산에서 언론인으로 일한 기자에게도 생소한 이도 있다. 개인적으로 조승환 정성국 서지영 주진우 정연욱 당선인은 ‘부산 정치인’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총선 전까지 부산에서 국회의원을 하겠다는 생각을 품은 적 있을까 의문이 드는 인물도 있다.
국민의힘이 부산진을 당내 경선에서 탈락한 정연욱 당선인을 부산 수영에 다시 꽂은 일은 지방의 무력함을 느끼게 한 드라마틱한 사례다. 정 당선인 당선 과정이 워낙 극적이다 보니 예로 들었을 뿐, 지역에서 봉사 한 번 한 적 없고 지역민이 원하는 정책을 제대로 모르는 인물이 희미한 지역 연고를 고리로 출마해 당선되는 일이 전국적으로 적지 않다.
지방 스스로 중앙 하수인을 자처한 일도 있었다. 선거 직전 만난 A 단체장은 “B 단체장보다 먼저 치고 나갔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그 단체장은 몇몇 행사에서 총선에 나선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원하는 돌발발언을 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A 구청장은 내심 B 구청장이 제대로 ‘한 건’ 하면서 다음 지방선거 공천 때 유리해졌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여 17 대 야 1’. 수도권 122석 중 103석을 야당이 차지한 이번 선거에서 부산 시민은 정반대 답을 내놨다. 전국 다른 어떤 곳보다 지방분권·균형발전 의지가 강하게 표출돼 온 도시가 부산이다. 부산은 소멸로 내몰리는 지방의 위기감을 반영한 선택을 한 것 아닐까. 지방의 영향력이 유례없이 감소된 가운데 치러진 선거로 뽑힌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22대 국회가 곧 출범한다. 어쩌면 단순히 총선 결과만이 아닐지 모른다. 지방의 위기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걱정이 앞선다.
김영한 사회부장 [email protected]
2024-05-1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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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산 국회의원들은 어디에 있나
지난해 2030세계박람회 부산 유치가 좌절된 이후 부산의 3대 현안을 꼽자면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통과, 산업은행 본사 부산 이전, 에어부산 분리매각이다.
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 부산의 가장 큰 현안으로 떠오른 건 단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제정이다. 파격적인 규제 혁신 등으로 부산을 싱가포르나 홍콩과 같은 국제도시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은 대통령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뤄지고 있다. ‘금융중심지 부산’ 활성화를 위해 산은 본사가 이전해야한다는 당위성 아래 이뤄진 산은법 개정안도 여권의 지지 속에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부산의 3대 현안 가운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과 산은법 개정안은 이미 법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야권의 반대로 보름 정도 남은 제21대 국회에서 통과되기는 난망해 보인다. 제22대 국회에서 여야의 협치가 필수불가결의 요소다.
하지만 에어부산 분리매각 문제는 상황이 다르다. 법 제정이나 개정 등이 필요 없다. 당리당략에 따른 여야의 협의 과정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대통령실이나 정부의 결정만으로도 에어부산 분리매각 문제는 해결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에어부산 분리매각은 몇년째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오히려 시간이 지연되면서 에어부산의 경쟁력은 저하되고 분리매각의 가능성은 떨어지고 있다.
에어부산 분리매각은 5년 전인 2019년 1월 부산 상공계가 아시아나항공 매각 과정서 필요성을 첫 제기했다. 2020년 9월 산은이 아시아나항공 자회사 분리매각을 언급하면서 분위기는 고조됐다. 같은 해 10월 국토교통부가 지방공항을 기반으로 하는 통합 LCC(저비용 항공사) 운영 방침을 언급하기도 했다. 2022년 7월 공정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에어부산 분리매각에 불을 지폈다.
지난해 11월 부산시, 상공계, 시민사회단체 등은 분리매각TF, 인수추진TF 등 에어부산 분리매각 추진협의회를 구성해 분리매각 운동을 본격화했다. 지난해 12월 에어부산 분리매각 요구 건의문을 첫 채택하고, 지난 2월부터 현재까지 분리매각을 촉구하는 잇단 기자회견이 이뤄졌다.
지역 상공계와 시민사회의 열망은 이처럼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상대적으로 시는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에어부산 지역 대표 주주로 분리매각의 구심적 역할을 해야 할 시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부산일보〉의 보도 뒤에 박형준 부산시장은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 시는 지난 2일 박 시장 주재로 시의회, 부산상의, 시민단체 등 각계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시정 현안 소통 간담회’를 갖고 에어부산 분리매각 활동을 강화하기로 결의했다. 시의 대응이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상공계와 시민사회의 열망을 받아들여 TF팀을 확대하고, 전방위적인 노력을 펼치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지역 정치권이다. 그동안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이나 산은법의 통과에는 중앙당 핑계만 대면서 지역 최대 현안을 외면해왔던 지역 정치권은 에어부산 분리매각 문제에는 아예 손을 놓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민의힘 부산시당이 시, 부산상의, 시의회 등과 에어부산 분리매각 현안 간담회를 개최한 뒤 후속 조치는 없었다. 지난달 말 국민의힘 22대 부산 당선인들이 당선 후 첫 모임을 갖고 부산지역 발전과 현안 사업 추진에 다같이 힘을 모으기로 했지만, 이 자리에서도 에어부산 분리매각에 대한 발언은 없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에어부산 분리매각 문제는 대통령실이나 정부의 결정만으로도 해결이 가능하다. 주요 당사자인 국토교통부, 아시아나항공의 주채권단인 산업은행, 그리고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합병한 대한항공 등을 대상으로 설득 작업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오히려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이나 산은법보다 더 빨리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명분도 충분하다.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 가덕신공항을 인천국제공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관문공항으로 성장시킨다는 윤 대통령의 공약이 있었고, 이를 위해서는 지역 거점 항공사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또 국토부와 산은도 지방공항을 기반으로 하는 통합 LCC 운영 방침과 에어부산 분리매각을 각각 언급한 바가 있어 이를 뒤집는 것에 대해 공세를 가하면 된다.
지역 정치권은 각성할 필요가 있다. 중앙당, 대통령실의 눈치를 볼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설득하면서 지역 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국토부와 산은, 대한항공 등에도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해야 한다. 지역 정치권이 어떻게 행동할지 부산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최세헌 경제부장 [email protected]
2024-05-1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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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채 상병 사망의 진실을 알고 싶다
평소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높은 편은 아니다. 매일의 바쁜 일상 탓에 정치 이슈가 멀게 느껴지는 것도 핑계 같은 이유가 되겠고, 가급적 그쪽과 거리를 두는 편이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가벼운 믿음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몇달 간은 정치 이슈가 꽤나 신경이 쓰였다.
지난 달 10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가 여느 때처럼 촉발제가 됐다. 고물가, 의대 정원 증원 사태,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 등 여러 이슈가 있었지만, 가장 눈길을 끈 건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으로 급부상했던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이었다.
사건은 지난해 7월 경북 예천군 호우 피해 지역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선 해병대 장병 가운데 한 명인 채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데서 시작한다. 우연히 유튜브 영상을 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터뜨렸다. 영상에서 아들의 실종 사실을 전해듣고 현장에 방문한 채 상병의 아버지는 “어떻게 구명조끼도 안 입히고 애를 물 속에 보낼 수가 있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우리 아이 어딨어요. 걔 외동이에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 나 이제 어떻게 살아요. 네?” 채 상병 어머니의 울부짓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후 진행 상황은 알려진대로다. 요약하자면, 해병대 수사단이 채 상병 사망 이후 현장 조사와 장병 9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질의 조사를 거쳐 임성근 사단장 등 8명의 간부에게 과실치사혐의가 있다고 초동수사 결론을 내렸고, 이를 해군 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에게 대면 보고한 뒤 군사법원법에 따라 경북지방경찰청에 이첩했다. 하지만 사건 이첩 과정에서 이종섭 당시 국방부장관은 갑작스레 이첩 보류를 지시했고, 경찰로 갔던 조사 기록은 곧바로 당일 저녁 다시 국방부 조사본부로 돌아왔다. 이 장관이 이첩 보류 지시를 내리기 직전에 대통령실의 전화를 받은 기록이 나오면서 수사 외압 의혹이 제기됐다.
국방부의 재조사에서는 사단장 등 6명이 혐의자에서 제외돼 대대장 등 2명으로 줄었고, 수사를 맡았던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은 되레 집단항명수괴죄(이후 항명죄로 변경)로 기소됐다. 일련의 과정에서 불거진 외압 의혹을 문제 삼아,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이 이종섭 전 장관 등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하면서 더디지만 현재까지도 수사는 이어지고 있다.
의혹에 기름을 붓는 일도 있었다. 공수처 수사가 진행되고 있던 지난 3월 4일 이 전 장관이 난데 없이 호주대사로 임명된 일이다. 피의자 신분으로 출국금지까지 내려졌던 이 전 장관을 총선을 한 달가량 앞둔 시점에서 대통령이 호주대사로 임명하자, 민심이 들끓었다.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9월 8일 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했다. 특검 수사 대상은 크게 두 갈래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진상 규명과 사건 수사 과정에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6일 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 등 야당 의원 181명의 동의를 얻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려졌고, 지난 2일 야권 주도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여야 합의로 일부 내용을 수정해 본회의 표결을 무난히 통과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달리, 국민의힘 의원들의 퇴장과 함께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가 예상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경우 오는 28일께 다시 한번 국회 표결이 진행되고 여기서 통과하지 못하면 새로 개원하는 22대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시나리오도 제기된다.
채 상병 특검법 처리를 두고 양당이 주장하는 입장 차이가 분명히 있고 그에 따른 디테일한 근거와 논리도 있을 테지만, 그런 것들은 평범한 국민들에겐 잘 공감되지 않는다. 그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좋겠다. 총선으로 민심을 확인했다고 하면서 왜 또다시 정치적 셈법을 따지고 유불리를 논하고 권력 뒤에 숨으려고 하는지 답답하다.
‘꽃다운 청춘’ 채 상병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에 대한 진실 규명은 반드시 필요하다. 누가 잘못해서 이런 비참한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지시와 시스템이 문제였는지 정확히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군도 나라도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무고한 죽음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지는 게 공정하고 상식적이다. 어떤 이는 적어도 국민이 한을 품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어떻게 나라를 믿고 자식을 군대에 맡길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오는 10일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이 되는 날이다. 기자회견을 예고한 윤 대통령이 소통과 수용의 자세를 보여줄지, 이목이 집중된다.
김경희 편집부장 [email protected]
2024-05-0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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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산 민주 패배한 4·10 총선 복기
22대 부산 총선은 17(국민의힘) 대 1(더불어민주당)이란 결과로 마무리됐다.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한 국민의힘 완승이었다. 175석(민주당) 대 108석(국민의힘)이라는 전체 결과와는 상반되는 결과였다. 당초 민주당이 부산 대부분 지역에서 선전하며 최대 절반가량의 의석을 기대했던 것을 고려하면 초라한 결과다. 19대 2석, 20대 6석(재보궐 포함), 21대 3석으로 부산에서 점차 존재감을 보이던 민주당의 의석수는 당시 통합민주당 소속이던 조경태(사하을) 의원 혼자 당선된 2008년 18대(1석)로 회귀했다.
22대 총선 직전 부산을 비롯한 PK 지역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의 돌풍은 매서웠다. 전국적인 정권 심판 바람에 조국혁신당까지 가세하면서 야권은 부산에서도 일을 낼 것 같았다. 실제 선거 직전 부산 야권은 4곳을 우세로 전망했고, 5곳을 경합 우세로 거론했다. 국민의힘도 확실한 우세 6곳을 제외하고 대부분을 박빙 승부로 예상하며 최소 2~4곳 정도는 내줄 것이라 우려했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와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와는 달리 전국적으로 야권이 192석을 얻어 압승을 거뒀지만, 부산은 정반대였다. 전재수(북갑) 의원 홀로 당선돼 전패를 면하는 데 그쳤다.
전국 민심과 달랐던 부산의 표심에 대해선 대체로 ‘샤이 보수’의 쏠림이 거론된다. 정권 심판론이 거센 상황에서 의견을 드러내길 꺼리는 숨은 보수들이 본투표는 물론 사전투표까지 적극 참여했다. 오류가 있었던 출구조사는 샤이 보수들이 대거 참여한 사전투표 표심을 잡아내지 못했다. 특히 부산의 경우 일부 지역 국민의힘 공천 잡음에도 개헌저지선(100석)이 뚫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부산 여권의 한 당선자는 “불통의 대통령실과 오만한 공천을 한 국민의힘을 심판하긴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잘한 것도 없는 야권에 브레이크 없이 독주하는 상황도 만들어줄 수는 없다는 유권자들의 심리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1대 총선 때 평균 44.3%였던 부산 민주당 후보들의 평균 득표율은 이번에는 45.1%로 소폭 증가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후보들과 대부분 한 자릿수 격차를 극복하지 못했다. 민주당 후보들로선 중앙당의 부산 지역 총선 전략 부재가 아쉬웠다. 야권 지지자들은 선거 결과를 두고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며 단순히 고령층의 표 쏠림으로 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당의 수도권 중심 선거 캠페인에 부산 등 PK는 소외된 감이 적지 않다. 월드엑스포 유치전이 맥없이 실패로 돌아가긴 했으나 국민의힘에선 줄곧 산업은행 이전과 부산글로벌허브도시 추진 등을 강조하며 부산에 공을 들인 반면, 민주당 지도부는 이를 외면했다. 급기야 민주당 부산시당이 총선을 앞두고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부산 이전을 1호 공약으로 내세워 급한 불을 끄려 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 등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쇠락하는 지역 부활을 위한 별다른 공약도 없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부산에 올 때마다 “부산에 진심”이라고 했던 말이 갈수록 알맹이 없이 공허하게 들리긴 했지만, 민주당에선 이러한 시늉조차 거의 없었다. 부산 유권자들에게 정권 심판론 말고는 민주당에 투표할 명분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부산 공약’에 발목을 잡는 민주당이 날개를 달면 오히려 부산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여야의 전쟁 같았던 4·10 총선이 끝난 지 20일 가까이 흘렀지만, 정국 상황은 선거 전과 별 달라진 게 없다. 반성한다던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여전히 친윤(친윤석열) 체제의 스크럼을 짜고 있고, 민주당은 각종 법안을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에 회부한 데 이어 22대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론을 꺼내며 독주하고 있다. 부산의 현실은 더 암담하다. 이번 총선 과정과 결과대로 국민의힘은 무력하고 민주당은 부산에 관심이 없다. 2년 전 대선 때 대통령 핵심 공약이었던 산은법 개정은 이번 국회에서 자동폐기되고, 차기 국회에서도 통과가 불투명하다. 29일 열리는 짧은 영수회담에서도 온갖 현안들 속에 지역 문제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어 보인다.
산은 이전과 부산글로벌허브도시 추진 등은 쓰러져가는 부산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다. 존재감이 예전 같지 않은 PK 정치권은 응집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밖에 없다. 더욱 긴밀한 협조 체제를 구축해 중앙무대에서 지역 현안들을 공동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부산 야권 승리를 염원하는 지지자들을 위해서라도 민주당의 태세 전환이 필요하다. 민주당 부산시당이 1호 공약으로 들고나온 ‘산은 이전’ 염원은 부산의 확실한 민심이다. 산은 이전에 진척이 없다면 민주당은 2년 뒤 지방선거에서도 핸디캡을 안고 싸워야 한다.
2024-04-2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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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다시 지역균형발전이다
이번 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야권이 역대 최대 격차로 압승한 데서 보듯 정권 심판론이 판세를 갈랐다. 민주당 공천 파동이나 개별 후보들의 막말과 자질 논란이 나오기도 했지만, 결국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이 모든 이슈를 덮었다. 좌파나 우파가 아닌 대파가 선거의 향방을 정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치솟는 물가와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성난 국민들이 현 정권에 등을 돌렸다.
정권 중간에 이뤄지는 선거이기에 심판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역 이슈가 주인공인 총선에서도 지역균형발전 의제가 주목받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이번 총선에도 어김없이 지역구마다 다양한 개발 공약이 앞다투어 제시됐다. 이런 개발 공약이 지역균형발전으로 바로 이어진다고 보긴 어렵다. 지역균형발전은 단순히 지역에 필요한 시설을 짓는 차원을 넘어, 인구 소멸이라는 국가적 재앙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지역 일자리 부족과 인구 소멸, 그리고 결국 국가 전체의 경쟁력 약화라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지역균형발전 공약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아쉽게도 여야의 이번 총선 공약에는 국가적 절박함보다 득표를 위한 절박함이 더 커 보였다. 지역 공약에는 예산이나 법 개정 등 구체적인 실천 방안에 의구심이 드는 장밋빛 개발 약속이 난무했다.
심지어 여야는 지역균형발전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말 수도권 표심을 위해 정부의 주된 정책 기조인 국가균형발전과 배치되는 ‘메가시티 서울’ 공약을 내세웠다. 김포를 비롯해 서울 인접 경기도 지역을 서울에 편입시켜 서울과 오가는 지역민의 편의를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 중 수도권에 인구 절반 이상 사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수도권 과밀이 심각하다는 일본도 인구 35%가량, 영국과 프랑스도 20%대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압도적인 수도권 과밀화가 국가 존치를 위협하는 인구 소멸로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메가시티 서울’ 공약으로 선거의 포문을 연 것은 집권 여당의 책임을 외면한 행태였다.
부산을 찾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산업은행 이전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산업은행 본점이 위치한 서울 영등포구가 지역구인 김민석 의원은 지난해 민주당 지도부가 되자마자 ‘산은 이전은 불법’이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산업은행 이전은 단순히 공공기관 하나가 지역에 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동남권에 해양과 물류, 금융을 연계한 산업을 키워 새로운 국가 성장 축으로 만들겠다는 지역균형발전의 핵심 전략 중 하나다.
민주당 지도부가 공공기관 이전에 소극적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2003년 노무현 정부가 기본 구상을 밝히면서 시작됐다. 수도권 표심을 잃는 위험을 무릅쓰고 노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이었던 행정수도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추진했다. 지역불균형의 폐해가 수도권과 지방의 공멸을 부른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공공기관 이전은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른 의무 사항이지만, 2019년 완료된 1차 공공기관 이전 이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민주당이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외면하는 것은 당 정체성과 배치된다.
총선 때도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균형발전 의제는 선거 이후 더욱 찬밥 신세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부산에서는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과 산은 이전, 에어부산 분리 매각 등 지역의 중요 이슈가 중앙 정치의 힘겨루기 식 정쟁에 파묻힐 것이라는 비관론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분명한 것은 민주당이 총선 압승에 도취되어 위력 과시에 치중한다면 이번 총선 결과는 오히려 독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 실정을 비판하는 민심을 민주당 인기라고 착각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압승으로 얻은 동력을 지역균형발전 난제 해결에 써야 한다. 수도권 블랙홀을 막기 위한 첫 걸음인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외면해선 안 된다. 국가 존망이 걸린 문제를 수도권 표심에만 매몰되어 느슨하게 생각해선 안될 일이다.
전국에서 완패하고 ‘영남당’ 수준으로 쪼그라든 여당이 ‘메가시티 서울’과 같이 지역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정책으로 수도권 표심을 구걸한다면, 지역 민심마저 외면할 것이란 것 또한 자명하다. 부산에서 민주당은 1석밖에 차지하지 못했지만, 후보 평균 득표율은 45%가 넘는다는 점은 부산 민심이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심판의 시간은 또 돌아온다.
송지연 기획취재부장 [email protected]
2024-04-2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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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롯데 자이언츠, 초반 몰락 이유는
2017년 리그 3위 이후 7년 만의 ‘가을야구 진출’을 노리는 롯데 자이언츠가 시즌 초반 최하위로 추락하며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시즌 개막 전 올해 KBO리그는 ‘5강 4중 1약’ 구도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LG와 한화를 비롯해 KT, KIA, 두산이 ‘5강’으로 분류돼 올해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또 중위권에서는 롯데와 SSG, NC, 삼성이 각축을 벌일 것으로 전망됐고, 키움은 ‘약팀’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롯데와 KT, 두산이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하위권으로 처져있다. 특히 롯데는 ‘우승 청부사’ 김태형 감독이 올 시즌 새 사령탑을 맡았다. 김 감독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2015년부터 2021년까지 두산을 7년 연속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던 명장이다. 김 감독은 “시즌 초반부터 기선 제압을 하는 게 중요하다”며 “선수단이 한마음이 되면 7년 만의 가을야구 진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김 감독의 당찬 각오와는 달리 롯데는 투타와 수비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시즌 초반 슬럼프에 빠져있다. 롯데가 이처럼 부진에 빠져있는 이유는 뭘까.
먼저 투수력을 살펴보면, ‘선발 야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데다 불펜진이 너무 자주 무너진다는 점이다. 5선발인 이인복은 아직 제 역할을 못 해주고 있고, 구승민과 최준용, 박진형, 김상수, 김원중 등 중간·마무리 투수들이 상대 타선을 틀어막지 못하고 경기 때마다 실점을 허용하고 있다.
팽팽한 접전 상황에서 불펜진의 실점은 경기 흐름을 상대에게 내주게 된다. 따라서 롯데의 핵심 불펜 투수인 구승민과 김원중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두 투수는 모두 올 시즌 후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는다. 그만큼 올 시즌에 임하는 동기부여가 잘 돼 있어 팬들도 맹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타선의 집중력 부족과 장타력 부재도 팀 성적 부진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 타선의 문제는 올 시즌 내내 롯데의 가장 큰 고심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롯데는 연패를 하는 동안 타선의 집중력 부재 현상이 지속됐다. 특히 득점권 기회에서 연속 안타가 터지지 않아 역전패를 하거나 경기의 주도권을 내주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홈런 등 장타력이 부족하고 ‘확실한 해결사’가 없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홈런은 그날 경기의 분위기를 한꺼번에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홈런 ‘한 방’이 경기의 흐름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롯데는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가 은퇴한 이후 상대팀에 위압감을 주는 거포형 타자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빅터 레이예스와 이학주만이 팀에서 유일하게 3할대 타율을 유지하고 있고, 주장 전준우은 최근 방망이가 침묵하고 있다. 여기에다 올 시즌 큰 기대를 모았던 유강남과 노진혁은 ‘거액의 FA 몸값’에 걸맞지 않는 1할대 타율에 허덕이고 있다.
또 롯데의 ‘차세대 거포’로 주목받았던 한동희는 지난 시즌부터 깊은 부진에 빠졌고, 올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부상 재활을 해도 그는 6월에 상무에 입대할 예정이어서 사실상 팀 전력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위 타선에서 역할을 해야 할 김민성과 나승엽도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매 시즌 겪어온 수비 불안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올 시즌을 앞두고 FA 2루수 안치홍이 한화로 이적했다. 안치홍은 롯데에서 지난 4년간 꾸준히 중심 타선에서 활약하며 타선의 무게감을 더해주는 선수였다. 롯데는 안치홍의 전력 이탈을 메우기 위해 2차 드래프트에서 오선진과 최항, 두 베테랑을 영입했고 FA 내야수 김민성을 사인 앤 트레이드로 영입했지만, 공수에서 안치홍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김태형 감독은 내야진의 수비 보강과 공격력 강화를 위해 시즌 중 LG에서 손호영을 데려왔고, 2021년 롯데 육성 선수로 입단한 이주찬을 백업 자원으로 자주 경기에 투입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학주, 박승욱, 최항, 손호영, 이주찬 등이 돌아가며 내야 수비를 맡는 불안한 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팀이 몰락의 상황까지 맞으면서 지난달 23일 개막전에 등록됐던 28명의 1군 엔트리 가운데 구승민, 박진, 오선진, 노진혁, 고승민 등 10명의 선수들이 2군으로 내려갔다.
롯데는 시즌 개막 전 김 감독의 카리스마와 용병술이 팀 전력 상승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과 비교해 아직은 눈에 띄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김 감독의 야구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두산을 7년 연속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던 명장의 리더십이 언제 빛을 발할지 롯데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024-04-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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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일상이 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살다보면 말문이 막힐 때가 있다. 자신이 불리해서 말을 못할 수도 있지만 세상 돌아가는 꼴이 하도 기가 막혀 입을 닫는 경우가 많다. 요즘 대한민국이 그렇다. 정치 지도자들부터 일반 국민들까지 뭐에 홀린듯 나라 전체가 비이상적이다. “이게 나라냐”란 생각이 들 정도다. 그야말로 ‘요지경 대한민국’이다.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최고 책임자이다. 그의 선택에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 모든 의사결정은 신중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두 달 가까이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린 ‘의대 증원’ 이슈는 상당히 문제가 많다.
윤석열 정부는 ‘의대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이면서 “우리 국민 다수가 찬성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런 식이라면 국회가 통과시킨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 김 여사 특검법도 찬성 여론이 훨씬 높았다. 김 여사 문제는 막대한 혈세를 투입해 특검을 실시할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
‘민심이 천심’인 것은 분명하지만 여론조사가 국민 전체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는다.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할 거면 정부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공론화 조사’를 무기로 탈원전 정책을 강행해 우리의 산업 경쟁력을 현저히 저하시킨 문재인 정권의 뼈아픈 실수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던가.
의대 증원과 같은 민감한 문제는 졸속으로 추진할 사안이 아니다. 정부가 주도할 사안은 더더욱 아니다.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협의기구에서 진행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의대 증원 문제를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가선 안 된다. 우리나라 의료계의 현실과 AI(인공지능) 확대에 따른 의료분야 축소, 출생률 저하, 산업계 부작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점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이 중국에도 뒤떨어졌다는 최근 정부 보고서가 발표된 상황에서 의대 증원은 우리의 기술력 저하에 기름을 붓는 꼴이다.
정치 지도자들의 수준은 낙제점에 가깝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검사 출신인 한동훈과 판사를 지낸 정영환을 데리고 와서 비대위원장과 공천관리위원장으로 각각 앉혔다. 예상대로 두 사람은 정치를 잘 모르면서 법조인 특유의 선민의식을 앞세워 국민들의 정서와 동떨어진 공천을 강행했다. 부산·울산·경남(PK) 유권자들 사이에서 부울경 국회의원 교체 요구가 높았지만 국민의힘은 현역을 거의 바꾸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교체율 높은 정당이 승리한다”는 역대 총선의 ‘승리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했다. 심지어 다른 지역 경선에서 떨어진 인물을 부산 수영에 전략공천하는 ‘막가파식 공천’까지 감행했다. 지금까지 이런 안하무인식 공천은 없었다. 국민의힘이 PK를 포함해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어쩌면 자업자득인지도 모른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표와 가까운 인물은 능력이나 자질과 무관하게 마구잡이로 공천했고, 이 대표 반대편에 섰던 인물은 무자비하게 내쳤다. 이른바 ‘비명 횡사, 친명 횡재’가 진행됐다. 적잖은 민주당 후보에게 부동산 투기, 불법 대출, 아빠 찬스, 막말 등 심각한 하자가 드러난 것이 당연할 결과인지 모른다. 그래도 민주당은 후보 사퇴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밀어붙였다. 국민을 완전히 우습게 아는 것이다.
조국혁신당은 더욱 심각하다. 본인과 딸 문제로 우리 사회에서 매장되다시피 했던 조국 전 법무장관은 비례정당을 만들어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대한민국 사회를 정상화 시켜야 한다. 단언컨대 일상화된 비정상의 정상화 없인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윤 대통령은 국정운영 기조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본인은 다소 억울하겠지만 지극히 낮은 국정 지지도의 원인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 각분야의 사람들을 두루 만나야 하고, 정부와 대통령실에 대한 대대적인 인적쇄신도 필요하다. 존재감이 없는 총리부터 당장 바꿔야 한다. 조각 수준의 개각과 대통령실 참모진 전면 교체가 필요하다.
정치권은 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실행력이 담보된 협의체를 만들어 대한민국 성장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국민들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총선은 인기 투표가 아니다. 4년간 대한민국 정치를 책임질 선량을 뽑는 것이다. 정당도 중요하지만 후보자 개인의 자질과 능력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허투루 행사하지 말자.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진짜 3, 4류 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2024-04-0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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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개장 10주년, 부산시민공원을 걸으며
다음 달이면 부산시민공원이 딱 열 살이 된다. 허남식 부산시장 시절이던 2014년 5월 1일 문을 열었다. 일제시대 경마장으로, 한국전쟁 이후 미군부대로 쓰인 역사를 뒤로하고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전체 넓이가 14만 평(47만 3911㎡)으로, 부산진구 범전동과 연지동 도심에 걸쳐 있다. 억눌렸던 시간의 반작용인지 주변으로 ‘숲세권’을 내건 개발이 한창이다.
초읍에서 내려온 부전천과 전포천이 나란히 공원을 흐른다. 나중에 동천과 합류해 바다로 간다. 사람들이 풀어준 관상어를 비롯해 잉어, 고둥, 물새, 오리, 청거북 따위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공원의 생태계는 북동쪽 화지산을 통해 성지곡어린이대공원, 백양산, 금정산으로 이어진다. 다만 초읍고개에서 단절된 것이 흠이다. 생태통로 같은 걸 만들면 좋겠다.
철따라 달라지는 나무를 보는 것이 시민공원의 큰 즐거움이다. 110만 그루가 있고 큰 나무(교목)만 보면 1만 4000그루에 달한다. 사람 구경도 재미있다. 잔디밭에서 도시락 먹는 연인, 도심백사장에서 쉬는 가족, 유채꽃밭에서 사진 찍는 중년, 맨발걷기하는 어르신…. 이곳이 없었다면 다들 어디로 갔을까. 공원이 얼마나 중요한 인프라인지 매일 절감한다.
연지동에 사는 필자는 시민공원을 걸어서 출퇴근한다. 주말에도 산책을 간다. 지난 10년간 이곳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흐뭇한 심정이다. 갈수록 나무가 풍성해지고, 아쉬운 대로 볼거리도 늘었다. 하지만 ‘옥에 티’처럼 바뀌지 않는 것이 있어 그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앞으로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바라며.
공원을 다니면서 불편한 점은 길을 막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공사를 한다거나, 잔디를 깎는다거나, 페인트칠을 한다거나, 덱 바닥이 미끄럽다는 등의 이유로 동선을 왜곡하는 일이 잦다. 최근에도 부전천 옆에 황톳길을 조성한다고 며칠째 메인 산책로를 막아버렸다. 공사할 때나 잔디 깎을 때 길을 꼭 전부 막아야 하는지, 바닥이 미끄러울 때 길을 막는 것 말고 대안은 없는지 궁금하다. 공간에 제약을 두지 않는 것이 공원의 최우선 조건이다.
공원에서 또 거슬리는 것은 계속되는 안내방송이다. 쓰레기, 흡연, 음주, 반려견, 코로나, 주차 등 각종 금지·주의사항을 알리는 방송이 수시로 나와 평화로운 산책을 방해한다. 압권은 ‘청렴송’. 청렴하자는 캠페인성 노래를 왜 일반 시민들이 공원까지 와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공원은 국민계몽의 장이 아니다. 상식에 맡기든가, 필요하면 다른 방법을 찾자.
시민공원은 부산시 산하 부산시설공단에서 관리한다. 필자가 지켜본 느낌으로는 질서정연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듯하다. 어린이대공원도 마찬가지다. 새로 생긴 북항친수공원도 그렇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물론 ‘관리’는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시민적 욕구를 지나치게 침해하지 않는 것이다.
공원 개장 때 운영 주체를 놓고 이미 논란이 있었다. 단순한 ‘시설관리’를 넘어 창의적인 프로그램 개발·운영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다. 대안으로 민·관 협치 방식이 제시됐지만 결국 시설공단이 맡았다. “공원 운영의 핵심 가치는 개방이다. 시민들이 즐기지 못하는 공원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2014년 4월 시설공단 고위 관계자의 인터뷰다. 개장 10주년을 맞는 동안 시설공단은 그 약속을 잘 지켜왔는가.
공원이 ‘도화지’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민들이 자기 방식대로 그림을 그리듯 자유롭게 즐기게 하자는 것이다. 그 위에 공연, 전시, 이벤트도 가미될 수 있다. 관리자 편의적으로 운영돼선 곤란하다. 본말전도다.
그래서 좀 더 근본적으로 공원의 ‘자연스러움’을 위해 인공적 요소를 줄여보는 건 어떨까 싶다. 관리는 최소화하고 일정 기간 ‘휴식제’ 같은 것을 도입해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금은 가지치기나 풀 깎기 등이 계속돼 자연스러움이 덜하고, 작업하느라 트럭과 중장비가 오가는 통에 늘 어수선하다. 부전천이 전포천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도 인위적인 ‘관리’의 손길이 덜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는 10일 총선을 앞두고 〈부산일보〉는 최근 시민들에게 ‘공통공약’을 받아봤다. 흔히들 떠올리는 거대 현안 말고도 생활의 변화를 바라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그늘을 갖춘 산책길 조성, 학교 신설, 병원 확충 같은 것이다. 정치와 행정의 궁극적 지향이 어디여야 하는지, 선거라는 절차가 왜 필요한지 생각하게 했다.
마침 지난달 18일 박형준 부산시장이 북구 화명수목원에서 공무원들과 간담회를 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부산 전역에 생활밀착형 공원녹지를 대대적으로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주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그러기에 앞서 이미 있는 공원을 잘 가꾸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집행이 곧 정책이다.
2024-03-3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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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결함
얼마 전 전시 때문에 한국을 방문한 유명 작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세계 최고의 갤러리를 비롯해 뮤지엄급 미술관에서 모셔갈 정도인 이 작가는 수십 년째 정치 사회 경제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를 만나 처음으로 한 질문이 “당신의 작품은 항상 정치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부담스럽지 않냐?“였다. 작가는 질문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다시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다. 당황스러웠다.
작가는 “한국에선 정치적이라는 말이 부담스럽나?”라고 반문했다. 결국 한국에서 그 표현은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과거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한 이야기까지 들은 후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정치적이라는 말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오히려 칭찬으로 느껴진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관심, 시대의 요구에 즉각 반응하고 그걸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찬사인 거 아닌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 한국에서 ‘정치’ 혹은 ‘정치적’이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심지어 청소년인 아들조차 협동 플레이 게임에서 책임을 회피하고 이간질하는 플레이어를 “정치질한다”라고 비난하는 걸 들은 적 있다. 한국에서 확실히 ‘정치’라는 표현은 혐오스럽거나 대화 주제로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4월 10일 열리는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신문과 방송에선 한참 전부터 예비후보와 경선·공천 결과를 주요 뉴스로 올리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2일 22대 총선 후보 등록을 마감했다. 전국 254개 지역구에 699명의 후보가 등록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후보 등록 결과를 바탕으로 각 언론에선 최고 경쟁률의 지역구, 연령별 분포, 지역별 경쟁률, 최연소와 최고령 후보 등 화제가 되는 정보들을 속속 전했다.
관련 뉴스 중 나의 눈길을 끈 정보는 후보자 성별 분포였다. 22대 총선 699명의 등록 후보 중 남성 후보가 600명으로 85.84%에 달했고 여성 후보는 99명으로 14.16%를 차지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여성 후보 30% 공천 할당제’를 지키기는커녕 여성 후보는 20%도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1995년 부산일보에 입사한 후 나의 첫 출입처인 여성 분야의 주요 요구가 ‘여성 후보 30% 공천 할당제’였던 것이 떠올렸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 모습은 국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을 허락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난해 5월 전·현직 여성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정은 국회를 비롯해 모든 영역에 성별 균형 원칙 도입을 촉구하는 ‘남녀동수의 날’을 제정·발표했다. 매년 5월 25일은 ‘남녀동수의 날’이며 5월 23일부터 27일까지는 ‘남녀동수 주간’으로 정했다.
18, 19,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혜훈 한국여성의정 대표는 “남녀동수 실현은 단순히 여성의 권익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 기본 가치를 구현해 내는 중요한 일이다. 남녀가 동등하게 대표돼야만 민주주의 본질인 그 가치가 지켜진다”고 밝혔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입법부인 국회뿐만 아니라 사법, 행정부까지 모든 지표에서 여성 비율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형편없이 저조하다. 21대 국회에서 여성의원은 19%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평균인 33.8%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순위로 따지면 37개국 중 34위다. 각국 여성의 정치참여 정도를 나타낸 국제의원연맹(IPU) 자료(2023년 기준)에 따르면, 180여 개국 중 한국의 순위는 120위이다. 우리나라 여성장관 비율은 공동 111위이며 조금 더 범위를 넓혀 대통령실을 비롯해 정부 부처 4개 기관 190명 핵심 고위공직자 중 여성은 7~8퍼센트에 불과하다. 사법부의 법원장 중 여성 법관 역시 한 자리수 비율에 그칠 뿐이다.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하면, 남녀동수제는 헛구호처럼 들릴 수도 있다. 여성들이 권리나 특혜를 조금 더 받겠다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평등한 대의제가 구성되지 않고 한쪽(남성)은 과잉 대표, 또 다른 한쪽(여성)은 과소 대표 됐다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심각한 결함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남녀동수제는 실제로 30여 나라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의미 있는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 선거 운동의 막이 올랐지만, 22대 국회의 얼굴이 벌써 예상된다. 아마도 50대 이상의 고학력 남성이 대부분일 것이다. 국민의 얼굴을 닮지 않은 국회를 언제까지 봐야 할까. 한국 민주주의의 결함을 고치기 위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을까.
2024-03-2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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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MY WAY'를 들으며…
20대 후반의 어느 심야 라디오 방송으로 기억한다. 입담이 좋아 예능 프로에 자주 출연하던 가수 A가 취향저격 올디즈를 소개하는 코너. “10년 전보다 지금이 더 좋고, 10년 후엔 더 좋아질 곡”이라고 했다. 프랭크 시내트라의 ‘My Way’. 젊은 나로서도(다시 말하지만 고작 20대 후반이었다) 그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그 후로 오랫동안, 때로는 앨범 속 시내트라의 목소리로, 때로는 하늘 같은 선배 세대의 혀 꼬인 목소리로, ‘My Way’를 들었고, 그때마다 그날의 방송을 떠올렸다. 한두 번쯤 술김에 객기가 충만해 1080번(금영 노래방 기계의 ‘My Way’ 곡 번호)을 누르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진 내게 어울리지 않는 곡. 시내트라가 이 곡을 처음 불렀을 때의 나이는 54세였다.
흥건히 취해 노래를 부르는 대선배들은 으레 한 손을 양복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가사 정도는 외워야지, 모니터 가사 따라읽기에 바쁘면 곡의 멋스러움이 반감한다. 그 모습을 보며 30대의 나 역시 50대의 어느 날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며 멋스럽게 이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바랐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I’ve lived a life that’s full, I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 해야 할 일을 비겁하게 피하지 않았다(I did what I had to do, and saw it through without exemtion)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중년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쉰을 목전에 둔 지금, 나는 여전히 앞만 바라보기에도 벅차다. 어디 나뿐일까. 2024년 한국의 많은 50대들에게 지난 인생을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다. 눈 앞에 헤쳐 나가야 할 숙제가 한둘이 아니다. 아파트 대출은 아직 수 년이 남았고, 학비며 용돈이며 입 벌리는 자식놈의 대학 졸업 또한 그 이상으로 남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부족하다.
나이에 걸맞은 사회적 삶, 역할이라는 게 있다. 흔히들 ‘사회적 나이’라 부른다. 과거에 비해 사회적 나이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수년 전, 현재와 과거의 나이를 비교하는 계산법이 소개되기도 했다. 자신의 나이에 0.8을 곱한 수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사회적 나이’라는 셈법이다. 2024년 현재 60세인 누군가는, 과거 48세 상당의 누군가와 사회적으로 비슷한 위치라는 의미다. 결국 예전 50대 후반에 어울릴 법한 ‘My Way’가 이제는 6, 70대는 되어야 어울리는 노래가 된 셈이다.
최근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가 다시 뜨겁다. 아파트 대출도, 자식놈 학비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50대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논의에 불을 붙인 것은 국민연금이었다. 지난 12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2개의 개혁안을 발표했다. 1, 2안의 내용은 달라도 2개의 개혁안 모두 의무가입 상한연령, 즉 국민연금을 납부해야 하는 나이는 현행 59세에서 64세로 상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64세까지 연금을 내려면 그때까지 일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정년연장 이야기로 이어졌다.
앞서 말한 ‘사회적 나이’를 고려할 때 정년연장 논의는 결코 이르지 않다. 여기에 0.65명이라는 충격적인 합계출산율까지 더해, 앞으로는 심각한 노동력 부족 현상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더이상 60세는 노동시장에서 은퇴할 나이가 아니다. 그렇다고 당장 정년연장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노사 의견도 갈린다. 노조 측은 정년연장을 주장하지만, 사용자 측은 퇴직 후 재고용과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다른 방안을 내놓는다. 정년연장이 단기적으로 청년 취업난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모로 어려운 사안이다.
어쨌든 논의는 다시 시작됐다. “정년연장이든 재고용이든 더 일할 수 있게만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50대 형님들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논의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지난해 프랑스에서는 62세 정년을 64세로 연장하는 내용의 연금개혁안이 통과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노조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며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노조가 앞장서 정년연장을 요구하는 우리와는 상황이 뒤바뀌었다. 그들은 왜 정년연장을 반대했을까. 이유는 여유로운 노후에 있다. 지금도 프랑스는 퇴직 후 바로 풍족한 연금 생활에 들어간다. 반면 우리는 정년 3~5년 뒤에나 빠듯한 연금을 받는다.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가계를 꾸리기조차 어려운 사회, 60세까지 일하고도 생계가 빠듯해 더 일하라고 스스로를 재촉해야 하는 이 사회가 씁쓸하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당연한 보상으로 안정된 노후를 보장 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정년연장 따위는 반갑지 않을 수도 있다. 예의 프랑스 노동자들처럼. 무던히 씁쓸한 이 마음은 퇴근 후 소주나 한 잔 걸치고 노래방에나 가서 달래야겠다.
김종열 문화부장 [email protected]
2024-03-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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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총선 D-30, 소멸이 소멸되다
남자아이 넷, 여자아이 셋. 모두 일곱 명이 입학했다. 전교 1학년생을 몽땅 합쳐 7명이다. 시골 어느 마을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입학철 부산 변두리 지역 한 초등학교 풍경이다. ‘지역 소멸’은 무슨 촌구석에만 해당되는 현상이 아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 구·군에서도 소멸 징후가 뚜렷하다.
올해 세계 최고 병원 순위에 부산지역 병원은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최근 꼽은 ‘2024년 세계 최고 병원’ 250위에 국내 병원 17곳이 포함됐다. 서울의 이른바 ‘빅5’ 병원을 비롯해 수도권 병원 16곳이 순위에 들었다. 웬만큼 이름이 알려진 수도권 큰 병원은 순위권에 다 포함됐다는 말이다. 수도권 이외 지역에선 대구가톨릭대병원 단 한 곳이 겨우 이름 올렸다. 그것도 국내 병원 17곳 가운데 맨 마지막 순위로 전체 235위를 기록했다. 근근이 250위에 턱걸이한 것이다. 도대체 우리의 지역 병원 수준은 이것밖에 안 되나.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기막히고 답답한 마음에 궁금증이 커졌다. 뉴스위크가 홈페이지에 따로 공개한 국가별 순위 자료를 살펴보니 지역에서 가장 이름난 병원들은 국내 병원들 가운데 20~30위권을 형성했다. 도토리 키 재기 하는 듯하다. 부산·울산·경남에서 순위가 가장 높은 부산대병원은 국내 29위에 머물렀다. 부울경에선 동아대병원(34위), 인제대해운대백병원(37위), 양산부산대병원(40위), 울산대병원(44위), 인제대백병원(48위), 국립경상대병원(54위), 국립경상대창원병원(55위), 고신대병원(62위) 등이 뒤를 잇는다. 미국 언론의 평가가 절대적이진 않다. 그러나 객관화된 평가 지표로 점수를 산출해 순위를 매겼다는 점에서 신뢰도가 형편없진 않을 것이다. 신뢰도를 떠나 해외 언론 평가에서도 어김없이 대한민국 지방과 수도권 격차가 극명하게 확인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2020년 7월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전체 인구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국토 면적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26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빽빽이 뒤엉켜 사는 서울공화국이다. 서울과 주변은 ‘초집중’ ‘초과밀’로 사람 살 곳이 못되는 공간으로 치닫고, 지방 또는 지역은 사람이 점점 사라지는 ‘소멸’의 구렁텅이가 돼 간다. 나라가 극도로 상반된 두 쪽으로 쪼개져 비정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꼴인데도 위정자들은 태연하다. 그다지 위기 의식이 없어 보인다.
4·10 국회의원 선거가 30일 앞으로 다가왔다. 소멸의 길로 빠져든 지역의 박탈감과 불안을 떠안아야 할 정치판은 지역에 무관심한 듯하다. 총선에서 지역 소멸이라는 의제가 소멸됐다. 요동치는 공천 정국에서 ‘검찰 독재 심판’ ‘운동권 청산’ ‘용산 특권’ ‘비명횡사’ 등의 온갖 공방이 난무한다. 정치적 공방 틈바구니에서 지역에 대한 관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한민국 지방을 대표하는 도시인 부산은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교육 붕괴’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대입 재수도 서울서 해야 한다는 세상이다. 지역 대학 위상은 말이 아니다. 지역 인재를 길러내는 지역 교육 시스템이 소멸될 위기다. 지역의 문화 여건은 좋았던 적이 없다. 많은 지역민들이 자신이 사는 곳을 문화 불모지로 비하한다.
‘의료 소멸’도 눈앞에 맞닥뜨린 현실이다. 부산에서 사고를 당한 현역 야당 대표가 부산 응급의료 시스템을 외면한 채 곧장 서울로 향하는 게 이 나라 현실이다. 뉴스위크가 선정한 세계 최고 병원을 보면 수도권에만 최우수 병원이 쏠린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가까운 일본은 세계 250위 이내 병원 15곳 가운데 8곳만이 도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있다. 나머지 7곳은 지역 병원들이다. 규슈대병원 나고야대병원 교토대병원 오사카대병원 등 주요 지역 국립대 병원 등이 당당히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다. 유럽 등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함부르크, 스위스 로잔, 덴마크 오르후스, 프랑스 릴 보르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로테르담,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이탈리아 볼로냐 등 각국의 수도가 아닌 지역에서도 세계 250위권 안의 베스트 병원들이 가동되고 있다. 지역 교육과 문화 의료 경제가 장기적 소멸 위기로 나아가면서 지역민의 자존감도 시나브로 옅어진다.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총선판에서 지역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현 정부는 출범 당시 주요 국정과제의 하나로 지역균형발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지역과 균형발전을 위해 아직 이뤄진 건 아무것도 없다. 지역 소멸에 대한 관심이 소멸된 총선. 어느 후보, 어느 정당이 지역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 선택의 순간까지 유심히 관찰해야 할 포인트다.
2024-03-1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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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글로벌 허브도시 추진, 속도가 중요해졌다
전국적으로 미래 전략 찾기가 한창이지만 지역 전략에서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처지가 극명하게 갈린다. 수도권은 경계 안에서 나눠 붙이는 작업에 골몰한다. 사람과 자본이 끝 모르는 듯 밀려들어 벌어지는 일로 보인다. 비대할 대로 비대해진 서울은 인구를 분산하고, 도시 기능도 나누기 위해 경기 일부 도시를 떼와 편입시키려 한다.
경기도는 아예 두 개 지역으로 ‘분도’를 꾀한다. 어느덧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광역지자체가 되면서 경기 동북부를 떼내 경기특별자치도를 따로 두려 한다.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디다는 게 이유다. ‘수도권 규제’를 벗어나겠다는 속셈도 엿보인다. 아무튼 ‘행복한 고민’이다.
반면 비수도권에선 뭉쳐서 위기를 극복하려는 전략을 내세운다. 22대 총선 후보들이 내세운 공약 키워드만 살펴봐도 이런 상황은 잘 드러난다. ‘부울경 메가시티’ ‘충청 메가시티’ ‘메가시티 청주’ ‘새만금 메가시티’ ‘중소복합형 메가시티’ 울산·포항·경주의 ‘해오름 동맹’…. 도시 영역을 키워 ‘규모의 효과’라도 꾀하자는 취지다.
비수도권의 시도가 성공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과밀·과대 상황을 ‘관리’하려는 수도권 처지와는 출발부터가 다르다. 인위적으로라도 변화를 줘 생존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는 없지만 초광역경제권, 메가시티 등 다양한 시도에서 쓴맛만 본 부산 사례를 보면 이런 통합 노력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지자체마다 한꺼번에 비슷한 전략을 쏟아낸 탓에 경쟁 구도가 형성된 점은 우려스럽다. 부산과 인천 간에 새로운 경쟁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정부가 천명한 ‘지방시대’의 골자는 서울과 부산을 두 축으로 균형발전을 이끌겠다는 것이다. 부산을 새로운 성장 축으로 키우려는 첫 시도였던 2030세계박람회 유치가 좌절되자 정부는 곧바로 부산을 글로벌 허브도시로 만들겠다는 ‘플랜B’를 제시했다. 대한민국이 부산의 가능성, 부산의 중요성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다시 밝힌 점은 다행스럽다.
대통령과 정부, 부산시가 뜻을 맞춰 글로벌 허브도시 준비에 착수했고, 부산 여야 의원 18명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1월 25일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하기에 이르렀다. 뒤이어 정부와 지자체가 특별법의 21대 국회 통과 노력을 펼치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인천이 부산의 새 경쟁자로 등장한 점이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인천은 부산에 뒤질 수 없다는 듯이 지난달 23일 김교흥 의원을 비롯한 인천 국회의원 등이 ‘인천 글로벌 경제거점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냈다.
두 법안은 주요 내용이 흡사한 ‘쌍둥이 법안’이다. 전체 47쪽인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처럼 인천 글로벌 경제거점도시 특별법은 45쪽 분량이다.
물류, 외부 투자 등을 강조한 법안 골자도 유사하다.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은 물류, 금융, 첨단산업 등 세 분야를 앞세워 국제물류특구, 부산금융특구, 부산투자진흥지구를 설립하는 내용이 담겼다.
인천 글로벌경제거점도시 특별법 역시 항공 여객 물류, 공항경제권 신산업, 첨단 산업·문화관광 산업 등 세 분야 특화를 내걸었다. 해당 분야 육성을 위해 각각 국제물류특구, 인천투자진흥지구, 문화산업진흥지구 등을 지정토록 하고 있다. 두 법안은 나란히 국무총리 소속의 위원회를 두고, 지자체가 종합계획·시행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제2도시 위상을 놓고 부산을 바싹 뒤쫓는 인천이 유사한 미래 성장 전략을 내민 상황은 불편하기만 하다. 김교흥 의원은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통과의 키를 쥐고 있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이어서 항변하기도 어렵다.
경쟁 대열에는 부산과 인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국 지자체가 잠재적 경쟁자다. 각 지자체들의 전략은 특구나 지구, 단지를 지정해 국가가 지원해 달라는 게 핵심이다. 규제를 해제해 좀체 지방으로 옮길 생각이 없는 기업을 하나라도 유인하려는 게 목적이며, 인구를 늘릴 수 있다는 바람도 담겼다. 한정된 국가 지원을 선점하겠다고 전국이 각축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약자끼리 경쟁을 펼치게 된 상황이 영 마뜩지 않다. 배 부른 수도권까지 슬쩍 발을 걸치는 상황에는 울화통이 치민다. 그나마 부산이 정부 지지를 등에 업고 경쟁의 선두에 서 있다는 점은 위안이다. 지금은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의 21대 국회 통과가 최우선 과제라 할 수 있다. 민관 따로 없이 부산 전체가 힘을 모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속도가 관건이다.
2024-03-0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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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산상의, 화합보다는 변화다
지난 16일 장인화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이 차기 부산상의 회장 출마에 나선 양재생 은산해운항공 회장에 대한 지지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날 부산상의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장 회장은 “현직 회장으로서 부산 상공계의 화합과 발전에 힘을 보태고자 연임을 포기했다”면서 “양 회장이 25대 상의를 잘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장 회장과 양 회장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부산 상공계 화합을 약속하며 포옹하고 손을 맞잡기도 했다.
이로써 다음 달 중순 임기를 시작하는 25대 부산상의 회장은 사실상 양 회장의 단독 추대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렇게 마무리되기까지는 드라마틱한 과정들의 연속이었다.
지난달 4일 24대 부산상의 회장단은 부산롯데호텔에서 열린 신년 오찬 간담회에서 장 회장을 25대 회장으로 다시 추대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어 같은달 17일 장 회장은 부산상의 회장 연임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상공계 일부에서는 회장단의 추대를 두고 ‘밀실 추대’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2030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실패, 지역 경제 침체, 상공계 파열음, 부산시체육회장 겸직 등 장 회장의 리더십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새로운 리더십을 원하는 목소리는 양 회장의 부산상의 회장 선거 출마로 이어졌다. 지난달 23일 양 회장이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부산상의 회장 선거는 3년 만에 다시 경선으로 치러지게 되면서 열기는 뜨거워졌다. 장 회장과 양 회장은 각각 선거 캠프를 가동하며 지지세를 끌어모으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 와중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달 25일 24대 초선 의원들이 장 회장의 연임을 지지하고 차기 회장 합의 추대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는 ‘세력 과시용’ ‘줄 세우기’라는 비판을 받으며 과열 선거를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경선으로 갈 것 같던 선거는 이즈음 분위기가 급변했다. 과열 선거로 상공계의 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상의 회장 등을 역임했던 상공계 원로들이 물밑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로들과 후보 간 회동은 잦아졌고 입장 차도 좁혀졌다. 결국 지난 5일 장 회장이 전격적으로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양 회장의 단독 추대가 이뤄졌다. 지역 상공계의 화합을 위한 대승적인 차원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4일 회장단의 장 회장 합의 추대로 불거진 25대 부산상의 회장 선거는 지난 5일 장 회장의 선거 불출마 선언으로, 한 달만에 일단락됐다. 이제 남은 것은 향후 3년간 부산 상공계를 이끌어나갈 양 회장이 어떻게, 얼마나 잘하느냐 여부에 달려있다. 지역 상공계와 시민들은 양 회장이 과연 어떤 리더십을 보이면서 침체된 지역 경제와 지역 현안 등을 견인해 나갈지 지켜보고 있다.
그는 상의회장 선거 출사표를 던지면서 △대기업 부산 유치 △부산 상공인 화합 △권익 보호·지역경제 대변 △부산 발전·지역사회 공헌 △지속가능한 상공회의소 등 5대 공약을 발표했다. 양 회장은 “부산을 떠났던 인재들이 부산으로 다시 돌아오고 부산이 전 세계에서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바뀌는 꿈을 현실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지역의 문제점을 총망라했다. 하지만 ‘부산을 떠났던 인재들이 부산으로 다시 돌아오고, 부산이 전 세계에서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바뀌는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다. 변화를 넘어 혁신이 필요하다. 혁신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화합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변화가 우선이다. 수동적인 관리보다는 역동성이 필요하다.
부산상의 회장 자리는 명예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봉사의 자리다. 부산 경제가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화합형’의 회장단 구성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일을 하기 위한 회장단 구성이 우선돼야 한다. 조직의 안정을 위한 사무처 조직 개편이 아니라, 혁신을 추동하기 위한 사무처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임기 3년이라는 시간은 어찌보면 변화의 완성을 이루기엔 짧을 수도 있다. 여러 현안을 처리하다보면 어영부영 시간이 가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상의 본연의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상의는 단순히 상공계의 친목단체가 아니다. 상공회의소법에 따른 엄연한 법정 단체다. ‘상의는 지역의 상공업계를 대표해 상공업의 발전을 꾀함을 목적으로 한다’를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다. ‘부산상의가 하는 일이 뭐 있냐’라는 비아냥마저 있는 현 상황에서, 실추된 부산상의의 위상을 높이는 초석만이라도 쌓는 게 상의회장의 역할과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양 회장으로 대변되는 ‘된다 된다 잘 된다 더 잘 된다’는 초긍정적 행복 에너지. 그를 부산 상공계의 수장으로까지 오르게 했다. 이 같은 긍정 에너지가 지역 경제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2024-02-25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