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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잊어서는 안 될 이야기
얼마 전 영국 공영방송 BBC의 탐사보도팀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버닝썬-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공개되면서 잊고 있던 버닝썬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1시간 남짓 분량의 다큐를 보다가 새삼 이 일들을 잊고 살아온 세월이 느껴졌다. ‘맞아, 이런 일이 있었지’ 하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다.
흔히들 시간이 약이라고 말한다. 시간이 흐르면 꽤 많은 일들이 잊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듯 모두의 아픔도 공평하게 앗아가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피해자들이 견뎌온 시간의 무게는 다른 이들과는 달랐을 것이다. 다큐에는 그 사건의 흔적을 안고 있는 직접적인 피해자뿐만 아니라 사건을 취재하면서 위협을 당해온 박효실, 강경윤 기자의 이야기도 심도 있게 다뤄졌다. 5년이 지났지만, 당시 버닝썬 사건을 취재하고 단독보도를 냈던 강경윤 기자는 정준영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 메시지를 보면 아직도 “심장이 아프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피해자들이 보낸 시간의 무게를 공감하고 연대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이번 버닝썬 다큐를 보면서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큐는 시기적으로 가해자 정준영의 출소와 맞물려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방송국 측에서 이 시기를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다시금 ‘버닝썬’을 떠올리게 하면서 비슷한 사건에 다시 시선을 모으고 피해자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했다. 이런 것이 언론의 순기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뉴스는 시의성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중요한 사건을 다시 상기시키는 ‘리마인더’의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분명 시간이 흘러도 가치 있는 뉴스들이 있기 때문이다. 〈부산일보〉가 기획 기사로 다뤘던 형제복지원 사건도 비슷한 측면에서 유의미한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2020년 〈부산일보〉는 피해자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 인터뷰했고 그때의 사건을 생생하게 기사와 영상 뉴스로 녹여냈다. 그 때문에 기사를 읽은 시민들은 여전히 부산이라는 지역에 피해자들이 살고 있으며 여전히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처럼 언론이 심도 있게 다룰수록 그 사회의 경험치와 마인드는 달라진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건사고들이 발생하고, 언론사들은 각 사의 판단 기준에 따라 뉴스를 보도한다. 어떤 사건을 중요도 있게 다룰 것인가는 각 사의 논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한 가지 희망하는 것은 언론들이 이번 버닝썬 다큐와 같이 사람들에게 잊힌 사건들도 수면 위로 올려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일들을 다시 다룰 것인가’를 고민할 때, ‘피해자 중심’이라는 기준이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여전히 다수의 폭력이 행해지고 양형 기준에 대한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피해자를 중심으로 사건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설파한 ‘파레시아’ 개념으로부터 그 근거를 빌려올 수 있다. 파레시아는 ‘두려움 없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의미한다. 그가 이 개념을 말한 이유는 사람마다 영향력과 발화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가 현실에서 엄연한 만큼 진실을 쉽게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존재에 더 많은 조명을 비춰야 한다는 뜻이다. 당위적으로 모든 사람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여겨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각 사람의 발화 크기는 모두 다르다. 부가 더 많을수록, 더 유명할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영향력이 크다. 이들이 가해자일 경우에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적은 피해자들은 자신의 이야기와 의견을 널리 알리기 어렵다. 이때 이들의 입에 마이크를 갖다 대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철 지난 뉴스들이 ‘끌올’(끌어 올리기)되는 게 익숙한 사회가 됐으면 한다. 그게 그 긴 시간을 버텨왔지만 여전히 아픔 속에 살아가고 있는 피해자들과 온도를 맞출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 누군가가 기억해 준다는 것은 큰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번 BBC 버닝썬 다큐에 대해 ‘이런 다큐가 한국 언론에서 나왔으면 더 좋았겠다’라는 댓글이 달렸고, 이 댓글은 많은 수의 추천을 받았다. 앞으로 한국 언론이 피해자 중심의 마인드를 장착해 여전히 중요하고 알아야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면 좋겠다. 그래야 다시는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동력을 모을 수 있고, 동시에 피해자들을 위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잊어서는 안 될 이야기를 찾는 것, 그것이 언론의 역할이자 뉴스를 읽는 대중들의 역할이다.
2024-06-1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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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조선의 범죄 수사를 되돌아보며
1790년(정조 14)에 전남 강진에서 김은애라는 여인이 안조이라는 여인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김은애를 사모하는 최정련이라는 사내가 그녀와 혼인하고자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사건이 비롯되었다. 이 사내는 안조이를 매파로 넣어 혼인하고자 하였으나 김은애는 이 또한 거부하고 부모가 정해주는 대로 혼인을 했다. 그러자 이에 앙심을 품은 안조이는 김은애에 관한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결국 김은애는 자신을 비방하는 소문을 퍼뜨린 안조이를 살해하게 된다.
김은애의 자백 내용은 이렇다. “제가 시집오기 전 이웃에 사는 최정련이란 자가 몰래 나와 간통했노라고 소문을 퍼뜨리고 안조이를 중간에 내세워 청혼해 왔습니다. 이를 허락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자 최정련은 안조이와 함께 추잡한 말로 더욱 심하게 무고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분을 참지 못하고 밤중에 칼을 들고 안조이의 집에 들어가 먼저 그 목을 찌르고 다시 난자하였으며, 이어 최정련의 집으로 가려 하였으나 저의 어미가 말려 그만두었습니다. 관청에서 최정련을 때려죽여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진술했다.
정조 때 발생한 참혹한 살인 사건
외견상 중범죄로 범인 처벌 불가피
하지만 끝까지 사건 실체 접근 노력
지금의 검사 수사, 권위주의 만연
전문 지식 만으로 세상 대처 안 돼
정의와 진실에 대한 의무감 중요
전형적인 일급 살인이다. 우발적으로 죽인 것도 아니고 밤에 남몰래 칼을 들고 들어가 피해자의 목을 찌르고 다시 난자한 뒤 최정련도 죽이려고 했다. 단계마다 계획 살인의 의도가 분명하다. 심지어 최정련을 때려죽이라고까지 요구했다. 이건 매우 악질적이다. 미국 배심원들에게 맡기면 아무리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도 백발백중 유죄 평결이 나올 만한 사안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두고 정조는 오랜 논의 끝에 살인을 범한 김은애를 석방했다. 목숨을 걸고 자신의 결백과 지조를 지키려고 한 점을 참작했다. 그리곤 그녀가 최정련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살인은 심각한 범죄지만 조선 시대 여인에게 지조는 생명과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사람을 죽인 것은 자신도 죽기를 각오하고 한 일이다. 즉 자신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건 것이다. 정조는 이를 감안해 김은애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한편 안조이는 어떨까. 생명 못지않게 중요한 한 여성의 지조를 더럽히는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오히려 그러한 행위를 죽어 마땅한 범죄로 판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이런 판단을 법조문만 아는 율사(律士)들이 내릴 수 있을까.
2년 후인 1792년, 동래장에서 엿을 팔던 박조이라는 30대 후반의 여인이 덕천동에서 화명동으로 가는 탄현이라는 고갯마루에서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있었다. 범인으로 지목된 손정일을 둘러싸고 무려 8년간 송사가 진행됐다. 여러 증거가 제시되었지만 모호한 내용도 있고 증언이 번복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손정일의 자백이 없었다. 정조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하교하였다.
“여러 차례 조사했으나 의문은 더하고, 자세히 조사하라고 했으나 도리어 모호해져 앞뒤로 사건을 논의하고 심의한 말들이 모두 ‘의심스럽다’는 한마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숙한 여자의 죽음은 원통한 가운데 원통하고 참혹하고 또 참혹하니 이를 풀어주려면 진짜 범인을 잡아내 즉시 법에 따라 처벌해야 마땅하다. 이 때문에 이렇게 많은 말로 하교하는 번거로움을 꺼리지 않는 것이다. 만약 진범이라고 하는 손정일이 진짜 범인이 아닌데 7년 동안 갇혀서 고문을 당하다가 만에 하나 옥중에서 죽기라도 한다면 정숙한 여자를 죽인 죗값을 치르게 하려다가 손정일의 원통한 죽음을 더하게 될 것이니, 어찌 재판의 이치가 이럴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하여 정조는 거듭거듭 조사를 명했고, 결국 1800년에 이르러 손정일의 자백서가 올라오면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물론 8년에 이르는 고문 끝에 결백함을 더 이상 주장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항간에 검사들이 재판 증거를 조작하기도 하고 피의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런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데는 검사 조직의 특수성도 한몫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권위주의적이면서 아직 검사동일체 원칙이 유지되고 있고, 검사 개인이 정의와 진실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보다는 상사의 명령에 구속돼 독립성을 상실하는 폐단도 없지 않다. 22시간에 이르는 밤샘 조사는 권위주의적으로 보이고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공정한 수사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결국 모든 일은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수사와 재판은 정의를 구현하고 진실을 밝히는 일이어야 한다. 전문 지식만으로 세상을 다스릴 수 없으며 전문 지식은 상식의 보조자이어야 한다. 검사를 ‘프로’라고 부르는 일부터 그만두고 ‘specialist’가 아니라 ‘generalist’로서 정의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2024-05-2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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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제재 필요성
부산 법원 바로 앞에서 칼부림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법원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많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목격했고, 길거리에 흥건했던 핏자국은 법원을 오갈 때마다 끔직한 현장을 되새기게 한다. 온라인에서의 다툼이 현실에서 살인까지 이어진 참극이다. 그동안 유튜브의 자극적인 콘텐츠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살인 현장이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그 영상이 수십만 조회수가 될 때까지 무방비로 노출되다니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가해자가 검거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계정에 구독자들을 향해 인사를 남긴 걸 보니, 그간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갈등 그리고 살인까지 이어진 일련의 일들은 플랫폼에서의 구독자들의 ‘관중 효과’의 영향이 지대한 것으로 보인다. 구독자들의 호응과 즉각적인 반응, 그리고 부추기는 분위기 속에서,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찾게 되고, 그 수요에 맞춰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유튜버들의 전쟁으로 온라인 세계에서 법과 도덕은 도외시되고 있다. 폭력과 마약 경험담 등 조폭들의 불법 콘텐츠들도 제재없이 조회수로 수익금을 올리고 있다니 온라인의 세계는 이미 필터링 기능이 사라졌다.
부산 법원 앞 칼부림 사망 사건
온라인 다툼이 현실로 이어진 참극
살인 현장 실시간 방송, 수십만 조회
온라인 세계 불법 콘텐츠 필터 상실
범죄수익금 계좌 동결 등 엄격한 규제
해외 플랫폼 제재 법안 신설 검토해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등 온라인 콘텐츠가 활발해지면서, 그로 인한 분쟁은 더 다양해지고 그 정도는 심각해지고 있지만, 이를 위한 예방책이나 제재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유튜브 등 온라인 콘텐츠에 대한 제재를 가하여야 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많지만, 실시간으로 수없이 쏟아지고 있는 해외 플랫폼의 콘텐츠들을 국내에서 어떻게 규제해야 할지가 막막한 상황이다. 결국 콘텐츠 창작자나 소비자의 자정 노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개개인을 제어할 수 없다면, 빅테크 기업들을 제재하는 방향으로 정책과 법을 제정하여야 한다. 빅테크 기업들은 유료 후원금 중 일부를 수수료로 가져가다 보니, 극단적인 콘텐츠의 제재에 적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까지도 나오고 있다.
국내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허위정보 등 불법 콘텐츠에 대한 삭제 등을 요청받았을 경우 삭제 및 임시조치 의무와 자율 규제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는 요청에 따른 소극적 의무에 그치고, 제재 조치가 미비하여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 이번 부산 칼부림 영상도 경찰 통보를 받고 즉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구글에 삭제 요청을 했다고 하지만, 삭제되기까지 10시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해외 플랫폼을 어떻게 제재할지가 문제인데, 유럽연합이 지난해 8월부터 도입한 디지털 서비스법(DSA)을 국내에서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핵심은 “오프라인에서 불법으로 간주되는 행위는 온라인에서도 금지된다”는 원칙이다. DSA에 의하면 글로벌 플랫폼은 자사 플랫폼에서 허위 정보, 차별적 콘텐츠, 아동 학대, 테러 선전 등의 불법 유해 콘텐츠를 의무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매출의 최대 6%의 과징금을 부과하며, 반복적으로 위반할 경우 EU 가입국에서 퇴출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독일은 NetzDG(소셜 네트워크에서의 법 집행 개선을 위한 법률)을 시행하여, 이용자가 신고한 불법 콘텐츠를 소셜 네트워크 사업자가 24시간 내 처리하여야 하며, 신고 절차 및 재심사 절차를 마련하고 반기별로 불법 콘텐츠 처리 결과를 담은 투명성 보고서를 발간하도록 하는 등 사업자의 책임성을 강조하고 있다. 독일의 NetzDG는 프랑스, 영국, 싱가포르, 인도, 브라질 등 최소 25개 국가에서 유사한 모델을 직·간접적으로 채택하고 있고, 법 시행 후 사례를 조사한 결과, 유튜브는 신고된 콘텐츠에 대해 매우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하는 바, 그 실효성이 입증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법안 제정에 있어서 참고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간 우리 정부는 온라인 플랫폼법 입법 논의를 하다가, 민간기업들끼리의 자율 규제로 충분하다고 하면서 손을 놓고 있었다. 해외 플랫폼 사업자를 제재하기 어렵다고 방치할 것이 아니라, 해외 사례를 참조하여 법 집행을 강제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현피’(온라인 다툼 당사자가 만나서 싸우는 것)과정을 담은 콘텐츠나 불법적인 영상으로 개인 후원계좌를 버젓이 영상에 띄우는 경우도 판을 치고 있는데, 그러한 영상이 발견되는 즉시 범죄수익금으로 계좌를 동결하는 조치를 취하여 엄격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콘텐츠 창작자 입장에서도 내가 만든 콘텐츠의 영향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쏟아지는 콘텐츠 속에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선택하여야 하고, 불법 콘텐츠에 대한 나의 무심결한 클릭이 범죄를 조장하고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하는 온라인 플랫폼이 범죄의 온상이 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될 일이다.
2024-05-1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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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불통과 불타는 소통 사이
올봄 연예계 소식에는 인상적인 소통의 장면들이 있었다. 하나는 스캔들로 점화된 배우 한소희의 SNS 소통이었고 다른 하나는 ‘역대급’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어도어 대표 민희진의 기자회견이었다. 한소희의 사례를 살펴보자면, 한 남자 연예인을 두고 전 여친과 현 여친인 두 여자 연예인이 다투는 것처럼 비쳐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오래 사귄 연인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연에 ‘환승연애’라는 의심이 씌워졌고 무고한 죄목에 억울했던 현 여친 한소희는 이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불타는 소통을 보여줬다.
매우 솔직했던, 그래서 사람들을 놀라게까지 한 소통법에 대해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녀의 소통은 아마도 실패한 것 같다. 이렇게 평할 수 있는 이유는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기거나 광고 재계약에 실패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녀가 가장 바랐을 일인 새로운 연인과의 사랑을 지키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약자 편에 서고 싶어 한다. 당연하게도 대중은 세 배우와 개인적인 친분도 전혀 없고 그들의 삼각관계가 어떤 복잡성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에는 커플이 된 두 사람보다는 혼자 남겨진 전 여자친구가 가장 지켜주고 싶은 약자로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전 여친인 배우 혜리의 입장에 훨씬 더 이입되고 공감하였다. 이미 무게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배우 한소희의 소통은 충분한 진심이 보였다고 하더라도 다수의 대중에게 반감을 일으켰다.
때로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기에 사실 아주 초반에는 이 스캔들의 전개를 가늠할 수 없었다. 어떻게 위기를 대처하는지에 따라 대중의 시선의 방향을 돌리거나 혹은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진 때를 기다려 해명을 시도하거나 혹은 오히려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파트너가 이번 일로 전 연애감정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관계가 돈독해지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말은 사뭇 다르게 나타났다.
그럼에도 팬들과의 활발한 소통을 매력으로 어필해 온 그녀의 스타일에서 고무적인 의미를 발견하기도 했다. 과거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소속사를 통해서만 대응했던 사례들과 달리 최근에는 스타가 스스로 입장문을 올리고 직접 댓글을 적는 일이 잦아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우리 사회가 더욱 소통 지향적이고 평등 지향적인 사회가 되었다는 방증처럼 보인다.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저 세상의 고고한 연예인이 아니라 함께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는 연예인을 원하는 것 같다. 스타들에게 작품활동만큼이나 팬들과의 관계 맺기와 SNS 채널 관리가 중요해진 이유기도 하다. 예컨대 마케팅에서도 연예인이 대중에게 인지도는 높을지라도 오히려 관여도와 충성도는 친밀하게 소통하는 유튜버나 인플루언서 쪽이 훨씬 높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적극적인 소통의 성공적인 최근 사례가 있다면 어도어 대표 민희진의 라이브 기자회견이었다. ‘개저씨’와 ‘지X’, ‘씨X’ 등 비속어가 필터 없이 등장한 사상 초유의 욕설 기자회견에서 그녀는 불타는 소통법으로 직장 내 성차별과 갑질 문제들을 거침없이 제기했다. 동시에 솔직하게 공개한 상황 설명과 억울한 감정들에서 ‘진정성’을 느낀 2030세대 직장인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며 밈과 이모티콘으로 회자되어 ‘개저씨 신드롬’을 만들었다. 또한 거대 기업과 엘리트 기득권에 맞서는 개인의 울분으로도 비쳐 약자 편에 서고 싶은 대중의 도덕심에도 호소되었다.
오늘날 소통은 매우 중요해졌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올해 보고서에 따르면 Z세대 공무원들은 공직사회를 떠나는 이유로 ‘소통이 안 돼서’를 1위로 꼽았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 듣기론, 젊은 사내문화를 가진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불만이 고조될 때는 회사의 어떤 소식을 내부 채널로 전달받기 이전에 언론 기사를 통해 먼저 접할 때라고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동의 여부를 떠나 회사가 구성원들에게 의사결정 과정을 공유하고 언질을 주는 것만으로도 ‘소통하고 있다, 존중받고 있다’는 인상의 차이는 확연하게 달라진다.
이런 소통의 감각들은 불통의 아이콘이 되고 싶지 않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따라 위기는 기회가 되어 국정 과정과 결과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대단한 게 아닐 수 있다. 열린 태도와 솔직한 대화, 경청하려는 노력, 겸손하고 낮은 자세, 존중받는다는 느낌 등 충분히 실천 가능한 것들이다. 더구나 대통령이 설령 지켜주고 싶은 약자의 위치는 아니더라도 굳이 강자처럼 보이려고 더 노력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2024-05-1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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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부산~북극항로’의 꿈, 점점 멀어져 가나?
일이 꼬여도 몹시 꼬여가는 분위기다. 걱정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지 않나 한다. ‘부산~북극항로’ 이야기다. (사)유라시아교육원은 최근 부경대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단과 공동으로 북극 해역의 인문·경제를 다루는 시민특강을 진행하였다. 부산항과 북극항로의 연결 전망과 시사점, 러시아의 극동 개발과 사할린 에너지 정책 등이 주요한 관심사였다. 이 자리에서 러시아 경제 전문가들과 시민들은 지난 2년간 심하게 틀어져 버린 한러 관계를 우려하면서, 이 좋지 못한 분위기가 특히 부산의 북극항로 진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한결같이 걱정하였다.
세계 3위권의 컨테이너 항만을 가진 부산은 대서양, 태평양, 아시아, 유럽 항로를 모두 연결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북극항로까지 보태지고 이 새로운 길을 부산 신항 개발과 항만 배후단지 조성, ‘글로벌 허브 도시 특별법’ 등과 연동할 수만 있다면, ‘낙후한’ 도시를 일거에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대박’을 맞이할 수도 있다. 북극항로 중에서도 러시아 해안을 따라가는 북동항로는 부산이 단순한 환적항의 수준을 넘어 국제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유럽으로 가는 물자의 수송 기간을 대폭 줄이고 물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그러면 ‘글로벌 가치사슬’(GVC)에 자연스레 편입되어 ‘동북아 해양수도로서의 부산’의 위상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크게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의 국제도시 도약 꿈
북극항로가 기회 될 수도
북극권 영향력 절대적인
러시아의 협력 전제돼야
현 정부 반러 정서 걸림돌
부산 자체 대응 전략 필요
그런데 이런 꿈을 꾸기 위해서는 한 가지의 조건이 있다.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러시아는 1916년부터 북극권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1996년의 오타와 선언 이후에 북극 인근의 8개국으로 북극 이사회가 만들어져 있다지만 이 동토의 땅에선 미국도 캐나다도 힘을 못 쓴다. 북극의 ‘대주주’는 북극 연안의 50% 이상을 가진 러시아다. 한국, 일본 등 13개국과 25개 비정부기구로 이뤄진 ‘옵서버’ 회원들은 반드시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서만 북극 논의에서 발언권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은 거의 경악할 수준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유엔총회의 기조연설에서 이례적으로 러시아를 맹비난하며 안보리 개혁까지 언급했다. “그동안 이어온 30년 우정을 아예 버리지는 말자”라며 푸틴이 내민 작년 말의 관계 복원 손짓에도 대통령실은 대러 수출통제 품목의 확대로 맞섰다. 정부의 입인 외교부 대변인이 나서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지칭하며 국제사회를 오도하고 있다”라고 불필요한 발언을 쏟아내는가 하면, 국방부 장관은 아예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직접 공급과 대러 적대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문화와 국제정치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지난달에는 세계적인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내한 공연까지 대러 제재 운운하며 막았다.
국제사회에 영원한 적과 친구가 어디 있으며, 있다면 국익을 위한 신중한 처신과 균형 외교가 있을 따름이다. 일본은 이렇게 처신 안 한다.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한미 동맹에 목을 매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국제사회에서 러시아를 제재하지만, 경제적으로 손해는 안 본다. 일본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친미 친서방 행보 속에서도 자국 액화가스(LNG) 수입의 8.8%를 차지하는 ‘러시아 사할린 2 프로젝트’에서 일본 회사들의 지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얻을 이익은 챙겨가며 러시아와 싸우고 있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북극에서 가져올 막대한 이익에 대비하여 북극항로를 아예 ‘빙상 실크로드’라고 이름 붙이고, 북극 과학기지에 무려 500여 명의 상주 인력을 파견시켜 놓고 있다.
침략은 침략이고, 한미 동맹은 동맹이며, 국익은 국익이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끝나지 않는 전쟁에서 지금처럼 편향외교, 편중외교를 계속 이어 나가다간 경제적으로 ‘쪽박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대러 적개심을 끊임없이 표출하는 한국 정부를 러시아 정부가 2022년 3월 7일에 발표한 ‘비우호 국가 명단’에서 빼줄 리 없고, 우리의 식탁에서 머지않아 러시아산 명태와 게가 사라질 수도 있다. 한국의 북극항로 참여가 완전히 물 건너갈 수 있음은 물론이다.
부산만이라도 정신 차리자. ‘북극 협력 주간 행사’나마 부산에 계속 유치하며 북극권의 러시아 지방정부와 지역 협력 네트워크를 계속 갖춰 나가고, 해운 항만 물류, 수산기술, 자원과 에너지 개발 역량 등을 키워 나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거의 휴면상태로 보이는 부산연구원의 북극 전략수립 기능을 종전처럼 회복하고, 북극 비즈니스 발굴, 북극권 인문사회 연구, 북극 전문가 양성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해가며 상황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2024-05-0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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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정글' 속 한국의 생존과 번영
2024년 현재 국제 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래 최고의 혼돈 상황이다.
세계적으로는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하고 있고, 유럽 지역에서는 러시아의 공격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출구가 보이지 않는 채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중동 지역에서는 작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기점으로 이스라엘이 시작한 가자 지역과 주민들에 대한 제노사이드(대량 학살)급 공격이 반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오랜 ‘그림자 전쟁’이 군사 공격으로 전환되면서 5차 중동전쟁의 발발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이렇듯 국제 질서가 ‘신냉전’으로 변화하면서 국제 사회의 본질인 정글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제 사회는 최고의 혼돈 상황
지구촌 전쟁 등으로 ‘신냉전’으로 변화
북한, 정세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
경제, 군사 분야에서 지원 확보해
과거 성과 자화자찬만 할 게 아니라
윤 대통령 외교안보정책 재구성 필요
이런 시점에 한국은 어떻게 생존과 번영을 확보할 것인가?
먼저 북한의 움직임을 보자. 북한은 2019년 신년사에서 미국이 제재와 압박으로 나온다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2월 3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통일을 전제로 한 특수관계’에서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이어 올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에서는 대외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중국·러시아와의 연대 및 미국에 대한 초강경 대응을 제시했다.
실제로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특별 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지하고, 러시아에 상당수의 포탄과 탄도미사일을 제공했다. 그 대가로 연료와 물자를 지원받고, 최근에는 러시아에 동결돼 있었던 계좌에서 900만 달러(119억 원)를 인출했다. 북한 경제에 내린 ‘단비’이다. 또 불안한 중동 정세를 배경으로 북한은 오랜 우방 이란과 탄도미사일과 핵기술 분야 협력도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올해 1월 초 일본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김정은이 직접 일본 기시다 총리에게 위로 서한을 보내는 등 일본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접근했다. 북한은 ‘신냉전’이라는 국제 정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경제, 군사 분야의 지원을 확보한 것이다.
한편, 2022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를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고, 한미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을 구축하고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힘을 통한 평화’에 근거한 억지 정책을 펴고, 한미일 3국 군사 공조는 물론 나토를 포함한 주요 우방국과의 안보 협력까지 강화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은 ‘동맹 및 서방과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지난 2년(2022~2023년) 동안 총 16회 25개국에 걸쳐 해외 순방을 했다.
이렇듯 열정적으로 해외 순방을 수행해 온 대통령이 4·10 총선을 50여 일 앞둔 2월 13일 독일·덴마크 국빈·공식 순방을 급거 취소했다. 국내 선거를 우선시해 외교 결례를 범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총선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은 참패했고 대통령의 지지율은 20% 후반으로 떨어졌다. 또 외신들은 윤 대통령이 ‘레임덕 리더’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놨다.
흥미로운 점은 총선 직후 개최된 4월 17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 강화를 자신의 큰 외교적 치적으로 강조한 사실이다. 1년 전 취임 1주년을 맞이해 개최된 국무회의(2023년 5월 16일)의 발언과 같았다. 지난 2년 동안 급격하게 변해 온 국제 정세와 한반도 상황이 대통령의 인식에는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지난 4월 25일 대통령실은 홈페이지에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 #대한민국#대통령#윤석열’을 게재했다. 중국 견제와 한미일 연대 강화를 목적으로 임명된 미국 국무부 부장관 커트 캠벨이 행한 “윤석열-기시다 노벨평화상 감” 발언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그 이유 역시 취임 초기에 행한 ‘미래지향적 한일 협력 관계 조성과 견고한 한미일 협력 체계 출범’이었다.
북한과 대립하고 있는 한국에 있어 튼튼한 한미 관계와 안정적인 한일 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게 될 북한-중국-러시아 연대의 고착화 차단도 필요하다. 그를 위해서는 중국 및 러시아와 소통해야 한다.
또 북한의 한국 배제 전략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억제 전략과 함께 대화를 통해 남북 관계를 주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 윤 대통령에게 필요한 일은 과거의 성과인 한미 관계, 한일 관계에 대한 자화자찬이 아니다. 정글화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한국이 생존과 발전을 할 수 있도록 외교안보정책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2024-05-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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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반대’와 함께 살아가기
올해 초 한 예능 프로그램이 화제였다.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라는 예능인데, 설정이 매우 파격적이다. ‘정치, 젠더, 계급, 사회윤리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12명의 젊은 남녀가 9일 동안 리더를 선발하고 상금을 분배하는 정치 서바이벌 사회실험’이 프로그램 취지다. 가령 좌파와 우파, 페미니즘과 이퀄리즘(평등주의), 서민층과 부유층 등 극단적으로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을 한 데 모아놓고 토론하게끔 하는 프로그램이다. 생각만 해도 뭔가 답답하고, 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의외로 이들이 대화를 나누고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가는 장면들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는 사람이 많았다. 입소문을 타고 급부상한,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예능이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가깝게 지낼 수 있을까? 대학을 가고, 사회에 나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와 다른 결의 사람은 왠지 피하게 된다는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혹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생기거든 정치나 종교 얘기는 함부로 입에 담지 말라는 조언도 많이 들었다. 다른 의견을 가졌을 때 수용 받는 경험도, 누군가를 수용하는 경험도 좀처럼 하기 힘들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모아놓고 대화를 나누게 한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꽤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는 그럴 일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2030 청년층은 양극화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2022년 대선 당시 20대 남성의 보수화와 20대 여성의 진보화가 메인 화두였다. 이번 달에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있었다고 정치평론가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 심지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30대의 사전투표율은 50·60대에 비해 10% 이상 낮게 나왔다고 한다. 그만큼 정치 자체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가 다른 세대에 비해 높지는 않은데, 양극화는 뚜렷한 상황이다.
단순히 평론가들의 분석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 양극화를 현실에서 체감할 만한 순간도 꽤 많았다. ‘이대남’과 ‘이대녀’ 등 성별에 따라 이념 대립이 뚜렷한 편이다. 그리고 사는 지역과 경제적 상황에 따라서도 성향이 나뉜다. 문제는 정치 성향은 다를 수 있지만 다 함께 모여 토론하거나 유의미한 합의점을 도출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2030 청년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양극단으로 나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대안 없이 서로 심판만 한다. 이번 총선을 치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대안을 가지고 오지는 않고, 거대 양당 둘이서 싸우기만 한다. 그 분열의 산물로 제3 정당들이 탄생하기도 했지만 그 과정 역시 매끄럽지는 않았다. 총선을 앞두고 어떤 정당을 찍어야 할지 공부할 겸 뉴스를 틀고 기사를 읽어 보고 토론회들을 보았지만 금방 피로해져 질리고 말았다. 토론이 부재한 자리에 싸움만 남아 있었다.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어떻게 대화하면 좋을지 모른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갈등하느니, 차라리 피해버리는 게 낫다고 모두들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현실 세계에서 이들이 대화를 나누지 못하면 논쟁은 자꾸 음지로 숨는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서로를 비방하고 헐뜯는다. 해결되지 않은 분노가 나보다 힘없는 약자에게 튄다. 그런 뉴스를 지금도 많이 접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토론 교육이 필요하다. 나와 다른 의견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런 의견을 듣고 건강하게 반박해 보고, 또 수용할 것은 수용할 줄 아는 자세. 이런 걸 누군가가 알려주면 좋겠다. 애석하게도 그렇게 대화하는 방법을 공교육 과정에서 배우지는 못했다. 만약 어렸을 때부터 이런 교육이 시작된다면, 국회에 있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배울 점이 아주 많아질 것이다. 부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아주 조금이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어볼 수 있지 않을까.
‘사상검증구역’ 예능에서는 출연자들이 한 공간 커뮤니티에 생활하며 세금도 징수하고 대표도 선출하는 모습들이 연출됐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한 나라를 꾸려갔다. 낮에는 공동체 게임을 하고 밤에는 첨예한 주제를 놓고 익명으로 토론한다. 이들은 같이 생활하는 동안 자신이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 들켜서는 안 되는 규칙 안에서 존재했다. 이 과정에서 절대 말을 섞어보지 못할 것 같은 두 사람이 협력하는 모습들이 있었다. 사상보다는 한 인간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결국 이게 세상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상은 달라도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드는, 그런 대한민국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2024-04-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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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즐겁고 맛있는 도시 부산
요즘 전국적으로 경기가 한산해진 느낌이 있다.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부산 관광 러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2007년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귀국했을 때 대한민국은 의료관광이라는 융합 관광에 관심을 가졌다. 의료관광은 동남아시아 관광의 메카였던 싱가포르와 태국이 관광 목적지로서의 수명이 다해가자, 관광 재도약을 위해 내걸었던 상품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당시의 의료관광이 전문 의료관광과 뷰티관광으로 갈래가 나누어져 태국 현지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에서도 구분되어 성행하고 있다. 이때 의료관광과 함께 주요 콘텐츠였던 의료기관들에서 성행했던 것이 인증기관 평가였다. 그중에서도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 국제 인증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국내 1호로 받으면서 국내 병원 간에 국제 인증 붐이 불었다. 보건복지부는 국내 의료기관 평가를 강화하여 새로운 인증 기준을 만들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인증 붐이 외식 산업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라고 하는 레스토랑 전문잡지가 선정하는 레스토랑 평가 브랜드이다. 레스토랑 평가 인증은 미쉐린 가이드의 훌륭한 브랜드 비즈니스임에는 틀림이 없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219개, 부산은 11개의 레스토랑이 선정되어 있다. 미쉐린 측은 미스터리 쇼핑을 통해 식당의 분위기나 서비스는 고려하지 않고 철저히 요리만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계약직 전문가를 고용하여 1년간 5~6차례 방문한다고는 하지만 요리를 평가 환경에 적합하도록 세팅된 곳에서 일괄적 평가를 하거나 전문가의 평가 센서가 철저히 분리 평가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지 않은 이상 객관적인 평가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의료기관 인증 붐이 일기 시작했을 때 JCI 인증을 받기 위해 국내 대형 병원들과 전문병원들은 미국 본사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국내 의료기관 인증평가 제도가 발전되면서 의료기관의 서비스와 질도 함께 향상돼 해외인증 붐은 사라졌다. 외식 산업은 어떨까? 2016년 서울, 2024년 부산에서 시작한 미쉐린 가이드가 호텔 인증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하면서 새로운 붐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힘입어 부산이 새로운 관광 콘텐츠로 음식관광에 관심을 가지면 어떨까. 부산의 대표 음식하면 밀면, 돼지국밥, 부산어묵 등 단품 음식이 대부분이다. 최근의 관광 트렌드는 단체 여행에서 개인 여행으로, 방문 목적지 여행에서 콘텐츠 체험 여행으로 변화했다. 새로운 체험이 필요하고, 음식은 필수 조건이다. 그런 면에서 부산 음식, B-푸드(Food) 개발에 힘쓰기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이러한 콘텐츠가 수익성을 내기 위해서는 단품이 아닌 부산만의 향기를 가지고 있는 음식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은 단지 코스 요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 문화와 교육적 인프라까지 포함한다. 외식 산업 측면에서 음식관광에 대한 산학연 및 지자체의 관심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다.
부산이 한식 명품 요리의 대표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산업·인적 발전 기반도 갖추어야 한다. 부산을 세계적인 조리학교의 메카로 만들면 어떨까. 전국에는 120여 개, 부산에는 6개의 조리 전공을 가진 특성화 고등학교가 있다. 대학 교육이 특성화 교육으로 전환되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고등학교 교육 콘텐츠도 경쟁력을 갖출 시기다. 프랑스 요리전문학원 ‘르 꼬르동 블루’는 이미 서울에서 아카데미를 하고 있으니, 부산은 미국 뉴욕의 조리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와 함께 새로운 B-food 문화를 만드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부산 영산대에는 CIA 출신 셰프 교수진과 대한민국 조리 명장들이 포진하고 있다. CIA 출신 셰프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도 부산 곳곳에서 자리 잡고 있다. CIA를 부산으로 유치하고 부산이 가지고 있는 한식, 해양, 부산 음식의 특성을 가지고 새로운 부산 음식, 대한민국의 새로운 한식 산업의 기초를 마련해서 한식의 세계화를 부산에서 시작해 보자.
미쉐린 가이드 레스토랑 인증 브랜드에 못지않은 한국 외식 산업에 좀 더 특화된 브랜드 인증평가 제도를 CIA와 함께 개발하고 해외 조리학교에서 아직 과목으로 등록되지 않았던 한식 조리를 부산에서 교과목으로 개발하는 사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식 조리 프로그램이 세계적인 교과목이 되는 순간 미국 조리학교로 유학 가던 아시아의 초보 셰프들도 부산으로 향하게 되고, 세계적인 셰프를 꿈꾸는 청년들도 부산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부산을 새로운 음식관광의 메카로 떠오르게 할 수 있는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이런 준비가 체험을 목적으로 하는 해외관광객을 부산으로 유입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2024-04-2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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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룡 칼럼] 부산은 분권이다
부산은 왜?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더러 있다. 가령 내가 관여하는 문학 영역에서 부산은 여타 지역과 다른 독자성과 자율성을 발휘하려는 경향이 크다는 소릴 자주 들었다. 대구나 광주가 서울과 소통하고 연계하려고 애를 쓴다면 부산은 그저 무덤덤하게 독자적인 자기 길을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와 소설 그리고 비평에서 발현하는 양상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해양문학은 부산의 특이성을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널리 회자하는 비평의 도시라는 말도 어느 정도 이에 상응한다. 무엇보다 문인들의 활동 양식이 중심에 흡인되지 않고 자기 세계를 견지하면서 특성을 형성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이와 같은 부산의 특수성은 부산과 부산 사람의 기질과 성향을 대변하면서 지역을 감각하고 사유하는 방법의 차이를 드러낸다. 그만큼 부산은 다른 지역과 다르다는 생각이다.
20세기 후반 황해 시대로 인천 부상
서울 살찌우는 수도권 영역 형성돼
1990년대 민주화 이후 지역주의 논의
일극 체제에 빨리 대처하는 운동 싹 터
2030부산엑스포 기점 중대 국면 맞아
내적으로 원심력 발산할 방법 강구를
부산의 독자성, 자율성, 특수성, 특이성을 감각하고 사유하는 부산 사람들은 상실의 기억을 토로하거나 향수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다. ‘한국에서 부산이 중요하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부산이 없는 한국은 없었다.’ 진한 자부와 동시에 어떤 허전함을 품은 말들인데 또한 다시 해보자는 의지가 없지 않다. 근대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부산은 우리나라 관문으로 그 위상이 드높았다. 개항 이후 식민도시로 성장하였으나 지정학적 중요성에서 수위를 유지했다. 무수한 내외국의 사람들이 들고난 장소(topos)가 부산이다. 그 기억의 적층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한국전쟁에서 부산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되지 않았는가? 과연 ‘부산 없는 한국은 없다’라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전후의 폐허 위에서 경제 부흥을 일으킨 산파역도 부산이다. 부산항이 있어 자원이 없는 나라의 숙명을 딛고 수출입국에 성공했다.
부산은 근대화의 주축일 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주역이다. 한편으로 제조업 융성을 이끌고 다른 한편으로 독재권력에 항거하는 용기 있고 지혜로운 도시가 1970~80년대의 부산이라고 할 수 있다. 서면에서 사상을 지나서 장림에 이르는 공단에서 일한 노동자와 그들이 생산한 그 많은 수출상품을 상기할 수 있고 부마항쟁에서 유월항쟁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거리의 함성을 떠올릴 수 있다. 이처럼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 수행한 도시가 어디에 있는가? 그만큼 부산이 지닌 특별한 심성이 틀리지 않는다. 적어도 20세기 한국의 역사에서 부산은 서울에 대응할 만한 위상과 내력을 지녔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진행된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물결은 오히려 부산의 파고를 높이는 역설을 가져왔다. 중국의 융성과 더불어 진행된 황해 시대는 인천을 부상하게 하는 한편 서울을 살찌우는 수도권이라는 영역을 형성했다. 급기야 제조업의 쇠퇴는 부산 경제의 후퇴를 가져왔다.
세계화와 더불어 중심이 강화되는 형국이 일국 안에서도 서서히 진행된 사정은 1980년대부터 나타난다. 공교롭게도 우리 사회에서 1990년대 민주화 이후는 부산이 하강하는 국면과 겹친다. 지역적 불균등 발전에 눈을 뜬 지역주의가 논의된 시점도 이때다. 지역 문인들과 사회학자들은 우리 사회의 중심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일찍이 각성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근대화 과정에서 경부의 축으로 오랫동안 균형을 유지한 부산이 하락하는 형국을 예민하게 감각한 셈이다. 물론 강렬한 이분법으로 중심을 적대하는 경향조차 나타나면서 사태가 왜곡되는 경향이 없지 않았으나 일극 체제로 기우는 정세를 민활하게 대처하는 운동이 싹텄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에 걸쳐 분권운동이 시동한 사건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운동이 시발한 진원이 부산이다. 부산은 거의 30여 년에 이르는 분권 운동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운동에 청춘을 바친 사람 가운데 장년에 이른 사람도 많다. 여전히 분권 운동에 헌신하고 있으니 평생 분권에 투신한 분들이다.
부산이 분권의 메카가 된 사정은 단지 부산의 지위 회복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도권이라는 일극 체제가 확장을 거듭하는 큰 가속의 시대에 직면해, 지역이 붕괴하고 소멸하는 사태는 반드시 전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발신한 분권운동은 공공기관의 지역 분산, 행정수도 건설 등으로 이어졌으나 요즘은 정체 국면을 맞고 있다. 발본적인 차원에서 한 단계 높은 도약이 요긴한 시점이다. 2030부산엑스포는 부산이 진행한 분권운동의 중대 국면이었다. 좌절의 아픔을 겪은 만큼 그와 같은 획기적인 정책이 아니라, 일극의 구심력을 약화하면서 내부로부터 원심력을 발산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해양과 수산은 부산의 특수성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보편성에 상응한다. 왜 우리를 그저 부산이라고만 부르는가?
2024-04-1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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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독재정권도 대화는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미래를 위한 글로벌 파트너’를 선언하기 70년도 전인 1950년대 초에 일본은 이미 미국의 파트너였다. 사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추축국인 일본의 무장을 해제하려 했다. 그러던 차에 소련이 핵 개발에 성공하고 중국 본토가 공산화되었다. 냉전이 심화하자 동아시아 반공 보루로서 일본의 중요성이 커졌다. 비록 적국이었지만 당시 이 지역에서 공산권에 맞설 수준의 산업화를 이룩한 곳은 일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의 경제를 부흥시킨 뒤 지역 거점으로 삼는다는 이른바 ‘역코스(Reverse Course)’ 정책을 추진했다. 걸림돌이 있었다면 한국과 일본의 껄끄러운 관계였다. 이에 미국은 양국의 국교 정상화를 강하게 압박했다.
1952년 2월 제1차 회담을 시작으로 1950년대에만 네 차례의 한일회담이 열렸다. 모두 결렬됐다. 기본조약, 청구권 문제, 어업 문제 등에서 이견이 워낙 컸다. 상황은 1960년대에 접어들며 바뀌었다. 우리 정부는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대규모 투자 재원이 필요했고, 10년 안에 국민 소득을 두 배로 올린다는 ‘소득 배증 계획’을 내건 이케다 하야토의 일본은 자국 기업의 해외 투자처가 필요했다.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상은 1962년 10월과 11월 두 차례 회담을 열었다.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민간 차관 1억 달러’의 청구권에 합의하는 메모를 작성했다.
한일회담이 진전될수록 국내에서의 반발은 커져만 갔다. 그도 그럴 것이 해방 후 2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1963년 가을에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가 설립돼 한일회담 반대 운동을 이끌어 가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해 11월, 민비연은 토론회를 열고 한 정부 관계자를 불렀다. 학생들 앞에 선 이는 “나이 구십이 되어 되돌아보니 여든아홉 해를 헛되게 살았다고 한탄하는데, 그래도 ‘뭔가 하지 않았느냐’는 많은 물음에는 미소 지을 뿐 대답하지 않는 자”. 바로 김종필이었다. 한일회담의 당사자이자 그 시절 중앙정보부장·집권당 의장을 지낸 인물이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는 대학생들과 토론을 벌이다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민비연 초대 집행부를 지냈고 이후 동교동계 일원이 된 김경재 전 의원도 훗날 “김종필은 참 멋있는 사람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라고 회고했다. 이듬해 3월에는 박정희 대통령도 서울 지역 11개 대학 학생 대표들을 만나 이 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그는 이후 한일 협정을 강행하고 이를 반대하는 대학생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그러나 정권의 일·이인자들이 정부 정책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청년들과 얼굴을 맞대고 토론했던 사실만큼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대화와 타협은 정치를 유지하게 하는 핵심 원리다. 법에 구구절절 쓰여있진 않았지만, 과거 정치인들 사이에선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풀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공유됐었다. 반대가 심한 정책은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만나 설득하고, 내각을 꾸릴 땐 되도록 인사청문회 결과를 존중하며, 법률안거부권은 어지간하면 행사해선 안 된다는 관행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정치적 컨센서스가 유지됐었기에 지금까지 그 많은 여소야대 국면에서도 대한민국이 순항할 수 있었던 건지 모른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에게서는 이런 정치적 컨센서스를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일례로 그는 2년이 안 되는 임기 동안 아홉 번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문민정부 이래 역대 대통령들이 행사한 거부권을 모두 합한 것과 같은 수다. 압도적 여소야대 상황에서 임기를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그럼에도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건 양곡법, 간호법같이 대화로 풀 수 있는 사안마저 거부권으로 일관했다는 사실이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치러야만 했던 큰 비용은 대통령의 고집과 불통 값이었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만나서 대화하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요청에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거절해 왔다. 임기 2년이 다 되도록 야당 대표와 제대로 된 회담 한 번 하지 않은 대통령은 그가 유일하다. 국민의힘이 참패하면서 공은 야당으로 넘어갔다. 과거 50만 들어줘도 됐을 야당의 요구를 이제는 100, 200을 들어줘도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일 부산 강서구 명지근린공원에서 열린 제79회 식목일 기념행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탁월한 리더십이 우리 산을 푸르게 만들었다”고 했다. 나무를 많이 심는 것도 좋지만 이왕 본받는 김에 한때나마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과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눴던 모습도 참고했으면 좋겠다.
2024-04-1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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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부산의 미래는 문화다
올해 초 부산 수영구가 지역에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문화도시로 선정됐다. 문화도시란 지역별로 특색 있는 문화예술·문화산업·관광·전통·역사 등 문화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문화창조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정된 곳이다. 그래서 수영구는 올해부터 4년간 최대 200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골목에서 바다로 함께 성장하는 문화연결도시 수영’이라는 비전을 만들고, ‘사회구성원 연결’ ‘골목과 바다의 연결’ ‘도시와 도시의 연결’ ‘어민·수군 협력체 어방 계승’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한편 문화도시센터를 설치하고 골목평상포럼, 25인의 방장, 문화도시포럼, 칸막이너머 포럼, 어방총회 등 각종 프로그램을 의욕적으로 운영 중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정책 제안도 이뤄졌고, 지역 주민이 동참하는 다양한 행사도 개최됐다. 수영구의 이런 적극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화도시 조성 사업이 문화보다는 주민 복지에 치중한 감이 없지 않다. 수영구를 문화도시로 만들려는 목적은 지속 가능한 문화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영구에만 있는 문화유산을 제대로 찾아내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수영구야말로 부산의 다른 어떤 곳보다 문화적 유산이 많다. 신라 시대부터 고려 말까지 동래의 치소였던 동래고읍성이 있었고, 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연수로다. 북서쪽으로는 역시 신라가 쌓은 배산성이 있는데, 이곳에선 전국에서 손꼽히는 집수지 그리고 부산 최초의 목간도 발견됐다. 남동쪽으로 수영천 가에는 수영성 즉 경상좌수영성이 있다. 이처럼 수영구는 전국적으로도 성곽이 가장 밀집된 곳이다. 또한 수영강은 지역 최초의 정치체라고 할 수 있는 거칠산국의 요람이고, 수영강 수계는 부산 역사의 원점이다. 수영강을 따라서 두구동 노포동 반여동 연산동 복천동 등에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다.
인천의 차이나타운이나 경기도 파주의 헤이리 예술마을은 이른바 핫플레이스다. 차이나타운은 조선 개항 이후의 역사를 중심에 두고 먹거리와 소소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헤이리에는 무려 11곳의 인증 박물관과 미술관이 모여 있다. 이 외에 수십 곳의 박물관 갤러리 예술인 스튜디오 등에선 다양한 예술공연이 이뤄진다. 한정된 공간에 모여 있고, 방향성이 뚜렷하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부산의 잠재력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우선 수영강이라는 부산 문화의 원점에 주목하자. 수영강 변을 그저 산책이나 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주변 지역에 있는 문화유산과 접촉할 수 있는 통로로 삼아야 한다. 박인로의 시비가 서있는 선소 자리를 비롯해 좌수영성, 동래고읍성, 배산성, 연산동고분군, 정과정, 복천동고분군, 동래읍성 등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강가에는 표지판을 세우고 간략한 설명과 함께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를 QR코드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수영구만의 노력으로는 문화도시 건설이라는 목표를 완수하기 어렵다. 수영강에 면한 해운대구 동래구 연제구 등과 긴밀하게 협조할 필요가 있겠다.
이미 각광을 받는 광안리라는 공간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광안리에 온 사람들을 수영강 쪽으로 이끌어 강변을 따라 펼쳐진 부산의 역사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광안리에서 수영강을 따라 과정교까지 왕래하는 배편을 만들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해야 주변 지역을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수영 선소에서 내려 팔도시장을 거쳐서 수영성에 이르고 남문을 거치면 천연기념물인 푸조나무, 안용복사당을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팔도시장도 그냥 전통시장이 아니라 부산 역사의 원점이자 성곽 도시의 중심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다양한 문화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문화도시답게 파는 물건 하나하나에 문화적인 특징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문화도시에서만 살 수 있는 상품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지하철, 버스로 이동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만 도중에 문화유산 관련 정보를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광안역의 경우라면, 어방축제를 비롯해 그 배경을 이루는 좌수영의 존재를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배산역의 경우도 부산 지역에 가장 이른 시기에 축성된 배산성이 있다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역을 나오면 유적지의 방향,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판도 필요하다.
관광에 힘을 쏟는 도시에 가보면 친절한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이미 남구에선 이를 추진하고 있다. 예산이 있을 땐 각종 사업을 펼치다가 나중에 예산이 끊기면 사업도 중단되는 상황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주어진 예산으로 지속해서 기능할 수 있는 기본적인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이 선행돼야 한다.
2024-04-0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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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계층사다리 아닌 정글짐 타기
지금 한국사회에 계층사다리는 존재하는가. 만약 존재한다면 계층사다리의 꼭짓점에는 의사가 자리한다고 여겨지는 것 같다. 의대 증원 결정이 지방의료 강화를 목적으로 추진된 취지와는 별개로 일련의 갈등은 어느 직업군보다 의사라는 직업이 한국사회에서 지니는 성공의 상징성과 강한 영향력을 방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계층사다리는 교육을 통해, 곧 열심히 공부하고 높은 성적을 거두면, 계층을 상승할 수 있다는 희망사다리로 여겨져 왔다. 직업 활동에서 경제적 보상이 더욱 중시되고 또한 직업별 금전보상의 격차가 확대되면서 현재 고소득 전문직종의 의사는 단연 인기 직업이다. 때문에 코피 터지는 입시경쟁을 뚫고 최상위권의 극소수만이 의대행 티켓을 얻을 수 있다. 저소득 계층에서 의사를 배출한다면 이른바 ‘개천용’(개천에서 난 용) 모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근래 ‘개천용’은 멸종 위기에 처했다. 의과대학 내 고소득층 자녀의 비율이 갈수록 높아져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의대생의 경우는 74%가 월소득 1100만 원 이상 가구라는 발표가 있었다. 지난해 전국 의대 정시 신입생 4명 중 3명이 ‘N수생’이라고 한다. 가정의 경제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계층 상승이 어렵다는 통계들은 가구소득에 따른 계층 고착화와 대물림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현대사회에서 계층사다리는 사라지고 ‘계층정글짐’으로 변모하고 있다. 놀이터에서 볼 수 있는 구름사다리와 정글짐을 시각적으로 상상해 본다. 구름사다리는 한 걸음씩 내딛으며 계단처럼 타고 오르는 기구라면 사방에서 출발하는 피라미드형의 정글짐은 사다리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다. 사다리는 앞사람을 따라 일방향으로 올라가면서 확실성과 안정성이 보장되지만 정해진 방향 없이 제각기 오르는 정글짐에서는 불확실성과 위험성이 커진다. 또한 과거 사다리를 타는 역량이 교육에 집중되었다면 정글짐에서의 경쟁력은 구조를 조망하는 지도(정보)나 장비(자원)와 네트워크(인맥) 등 요소가 복합적이다.
형태의 변모는 정부의 역할에도 변화를 요구한다. 정권 교체기마다 대입제도를 뜯어고치며 계층사다리 재건을 표명해 왔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 것 같다. 청소년기의 공부를 성장이 아닌 계층 상승을 위한 도구처럼 여기도록 교육정책이 입시 위주로 다뤄진 결과 학생들은 자신의 강점과 적성을 탐색할 수 있는 교육기회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했다. 좋아하는 분야를 찾고 다양한 갈래의 진로를 접해볼 수 있는 정보의 격차는 계층사다리의 시공간적 상상력을 제한하며 정글짐으로 변화한 환경을 파악하는 데 인지적 불평등을 발생시킨다.
한편 자신의 꿈과 기회를 포착하더라도 불확실성과 위험성이 높아진 환경에서 재기의 여력에 따라 도전 여부를 결정하는 실천적 차원의 불평등도 발생한다. 즉, 정글짐 아래에 얼마나 두툼한 쿠션이 나를 받쳐주고 있는지에 따라 추락했을 때 생존 가능성이 달라진다. 사다리보다 위험한 정글짐은 낙하 확률이 커졌고 내가 가진 쿠션이 미약해 떨어지면 회생불가한 조건에서는 정글짐에서 한 발 내딛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정글짐의 변모는 양면적인 특성을 지닌다. 사다리보다 입체적인 정글짐은 진로에 정답이 없고 어떤 방향에서나 오르막길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내가 올라가지 않으면 정체가 발생하거나 아래쪽 사람에게 추월당하는 사다리는 수직적인 사고에 갇히는 반면 정글짐은 양옆으로도 밧줄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수평적인 이동이 가능하고 잠시 멈춰서도 뒤처짐이라 단정하기 어렵다. 자신의 길을 창의적으로 개척하며 오르기에 단순한 비교경쟁도 덜할 수 있다.
사다리와 정글짐을 계층 이동에 대입한다면 결국 기회의 평등은 소수의 최상위권을 위한 독점적인 교육제도가 아닌 각자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풍부한 경험을 폭넓게 제공하는 것과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특히 추락하면 즉사하는 살벌함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고 재도전할 수 있는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누구나 확실하고 안정적인 길을 원하기에 치열한 입시경쟁으로 얻은 성취는 보상심리를 강화시키고 성적으로 꿈을 결정해 왔다. 다양한 삶의 가치와 방향을 발견하고 시도해 볼 수 있다면 모두가 일률적으로 같은 사다리에 오르지 않고 직업적 만족감 역시 금전적 이해로부터 조금은 관대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정글짐 내 활발한 이동의 자유와 기회의 평등이 보장될 때에야 비로소 수직적인 이동뿐만 아니라 수평적인 이동을 통하여 급변하는 시대에 유연한 진로 설계와 도전이 가능해진다.
2024-04-0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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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미래의 길,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지난달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를 다녀왔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에서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트로 이어지는 2400km의 여정이었다. 서부의 히바와 남부의 부하라를 이어주는 키질쿰 황야, 크기가 대한민국의 3배나 되는 붉은 사막은 기차로 7시간을 가도 모래, 자갈, 마른 관목뿐이었다. 그나마 눈이 희뜩희뜩 날리는 바람에 적막과 황막함이 덜했다고나 할까.
실크로드가 달라지고 있다. 타슈켄트엔 차량이 폭증하여 코로나19 이전에는 차로 10분이면 가던 거리를 1시간이나 가야 했다. 준법의식도 강화되어서 차창으로 작은 쓰레기라도 버리면 누군가 득달같이 사진을 찍어 경찰에 신고한다. 그러면 벌금 통지서가 바로 집으로 날아든다. 시내엔 대규모 IT 단지가 새로 세워지고 있다. 땅은 계속 국가 소유지만 건물은 매매가 허용되어서 외국인도 아파트를 살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부산이라고 할 수 있는 제2의 도시 사마르칸트도 도시 면모가 일신되고 거리가 복잡해졌다.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모습
한층 더 풍성해진 다중문화
전통과 현대 공존으로 활기
수천 년 역사의 도시 부산
경제논리에 다양성 사라져
문화적 다채로움 되찾아야
이번 여행의 뒷맛을 크게 세 가지로 표현한다면 더 화려해진 풍성함, 전통과 현대의 동거, 더 새로워진 다중문화라고 할 수 있겠다. 동서양의 사람, 산물, 사상이 만나는 실크로드는 본래 다중심의 천연색 사회이지만, 점점 더 풍성해지고 다채로워지는 듯하다.
식탁부터가 그렇다. 이번에도 호라즘의 삼사(화덕 만두), 아무다리야강의 잉어 튀김, 부하라와 사마르칸트의 쁠롭(기름 볶음밥), 터키 할랄 음식, 중앙아시아화된 이탈리아 피자, 코카서스의 가지 튀김과 포도잎 요리, 러시아의 깔바사(소시지 일종)와 카샤(죽) 등 더 다양해진 음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마시는 차도 전 세계의 모든 차가 다 들어와 중앙아시아의 향과 섞여 독특한 풍미를 냈다.
하루가 다르게 가속되는 도시화 속에서도 전통은 곳곳에서 이전처럼 도시의 주인으로 남아, 기원전의 조로아스터도 호라즘 지방의 50여 흙성채에 그대로 남아 숨 쉬고 있고 건축물의 구조, 벽면의 상징과 무늬에 건재하다. 2500년 역사의 부하라 시민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집 안에 촛불부터 먼저 켠다든지, 결혼식 때 신랑이 신붓집에 가서 집 앞에 모닥불을 피우고 신부를 메고 불을 세 번 돈다든지 하는 조로아스터 시대의 풍습을 그대로 지키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과 로마제국을 연결하던 옛 물류 창고 캐러밴 사라이도 낙타와 말을 매어두던 1층 공간은 그대로 둔 채 호텔이나 식당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전통 시장인 보조르나 환전, 모자, 금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던 전문시장 타키도 수천·수백 년 된 둥근 지붕을 이고 옛 멋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현대적인 백화점과 수공업자들의 공방으로 활용되고 있다. 유네스코도 이런 문화가치를 인정하여 이들 전통 공방의 가죽, 금속세공, 대장간, 도자기, 비단 제조 기술 등을 보호하고 지원하고 있다.
중세 티무르제국의 수도인 사마르칸트도 이전의 우중충한 모습을 걷어내고 국제 관광도시로 변하고 있다. 특히 새로 설치한 야간 조명이 품위 있고 아름다워서, 밤에 나가본 레기스탄 광장은 이게 현실인가 싶을 정도였다. 은은한 황금색으로 빛나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모스크, 웅장한 미나렛 첨탑 그리고 옛 종합대학인 메드레세가 검은 밤과 어우러져 저절로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어느 도시 어느 구역을 가나 활기가 넘친다. 고대와 현대가 어우러지고, 지방과 수도가 각자의 색과 문화를 유지한 채 공존하고 화합하고 있다. 하나의 공동체 안에 고대 페르시아, 헬레니즘, 조로아스터 전통, 아랍 문명, 중세의 튀르크와 티무르 문명, 근현대의 러시아 문화가 겹겹이 쌓여있고 보존되고 있는 것도 놀랍지만, 그 모든 지층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살아나 현대와 어울리면서 새로운 조화를 이루어가고 있는 현실은 매우 수준 있어 보였다.
우리 부산도 거칠산국으로부터 시작하면 거의 2000년 역사의 도시이다. 그리고 갈수록 외국인이 늘어 내년쯤에는 초등학교 교실 1개 반에 4~5명의 다문화 가정의 학생이 입학한다. 그런데 부산 어디에 문화적 다채로움과 풍성함이 있을까. 전통은 경제 논리와 현대문명에 눌려 거의 빈사 상태가 아닌가 싶다. 사회적 요청은 각 민족의 개성과 문화를 존중하는 다중문화 사회인데, 과연 부산 시민의 의식과 생활은 국제적일까. 현재의 국민소득 수치로만 세계를 재단해서는 문화민족, 문화도시라고 할 수 없다.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는 15~16세기의 대항해 시대 이후에 사라진 과거의 길이 아니다. 빠르게 다가오는 이 다중문화 시대에 중앙아시아 비단길이 사실은 우리가 새롭게 본받고 연구해야 할 미래의 길은 아닌지, 같이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2024-03-2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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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비트코인 1억 원 돌파의 이면
비트코인이 역사적 고점을 연일 경신하고 있다. 불과 작년 1월만 하더라도 1비트코인은 2500만 원 선이었는데, 이제 1억 원으로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하고 있다.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승인되면서 거대 자본을 보유한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가상자산 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에 덩달아 다른 코인들도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고물가에 경제는 어렵고 시중에 현금은 없다고 하는데도 이렇게 비트코인을 상승시키는 요인은 무엇인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 세계에서 담보되는 실물 자산도 없는데 어떤 변수가 이러한 변화를 이끌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수익을 추구해야 하는 자본이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에서 길을 찾지 못해 가상자산 쪽으로 몰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가상자산이 이제 본격적으로 재산권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상승 랠리의 원동력 중 하나가 바로 우리 한국 시장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가상자산 투자자들은 상승 랠리에 자금을 집중시켜 그 효과를 폭발시키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이나 다른 코인들의 시세는 해외 시세들과 비교해 작게는 3~4%, 크게는 7~8%까지 높게 형성되어 있다. 쉽게 말해 한국에서는 가상자산을 해외보다 훨씬 비싸게 사고 있는 것이다. 이를 소위 ‘김치 프리미엄’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되면 해외에서 싼 가격에 비트코인을 사서 한국 거래소에 가져와 팔아, 그 차액만큼 쉽게 수익을 올리게 된다. 차액 거래로 인한 수익률이 7~8%에 이른다. 이러한 사실을 경고하듯 강조하는 거래소도 있지만, 이는 투자자들에게 주의를 환기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열광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 투자자들은 비이성적이거나 무지해서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문제는 한국 가상자산 시장만이 갖는 규제가 주된 원인이다. 사실 규제라고 하기도 어렵다. 소위 금융당국의 ‘창구 지도’라 일컬어지는 구두 경고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법인이 가상자산에 투자하거나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은 없다. 그런데도 법인은 가상자산 거래소에 계정을 개설할 수 없다. 2년 전에 코빗이 법인 계정 개설을 시작했다가 금융당국의 제지로 소리 소문 없이 중단했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법인 계정 개설은 국내 거래소에서는 금기시되고 있다. 즉, 한국 가상자산 거래소에서는 법인이 원화 거래를 할 수 없다. 해외에서도 가능한, 그리고 개인도 가능한 ‘법정화폐로 가상자산을 사고파는 것’이 법인에 있어서는 봉쇄돼 있다.
이 때문에 기관투자자들은 한국 가상자산 시장으로의 접근이 어려워진다. 결국 다른 해외 거래소들과 시세 차가 발생해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김치 프리미엄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외의 경우, 아주 약간이라도 시세 차가 발생하면 자본력이 있는 기관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시세가 높은 곳으로 이동해 순식간에 시세 차이가 소멸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시세 평준화가 작동하기 힘든 상황이다. 아마도 우리 금융당국은 상대적으로 자본력이나 정보력에서 열위에 있는 개인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소 진입을 차단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오히려 가상자산 시세 왜곡을 낳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공공연히 알려진 바로는 소수의 법인은 개인 투자자로부터 거래 계정을 빌리는 등의 방법으로, 마치 개인인 것처럼 가장해 거래하는 탈법적인 양태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2년 전에 김치 프리미엄을 악용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빠져나간 13조 원의 돈이 위법한 형태로 해외로 송금된 사건이 있었는데, 김치 프리미엄이 없었다면 감히 그러한 불법적인 일을 실행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주식시장은 개인이 직접 주식에 투자해 손실을 보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ETF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기관투자자들이 개인들을 고객으로 받아 그들의 투자금을 모아 큰 자본력을 바탕으로 거래한다는 것이다. 즉, 기관투자자의 거래가 활성화되면 개인 투자자의 리스크 헤지 수단이 만들어질 수 있다. 현재 정부 당국에서도 기관투자자의 가상자산 거래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상자산이 적어도 MZ세대들에게는 부동산, 주식 같은 재테크 수단이자 주요한 자산 중 하나인데, 압력이나 압박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24시간 글로벌로 유통되는 가상자산 시장에서 김치 프리미엄이 더 이상 한국만의 왜곡된 시장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2024-03-2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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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의사 집단사직과 지역균형
의대 정원 확충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끝날 기미를 안 보인다. 뉴스를 읽다 뜬금없이 TV 드라마 하나가 떠올랐다. 작년에 방영된 ‘웰컴투 삼달리’다. 이 드라마는 성공한 포토그래퍼 ‘조삼달’이 억울한 일에 휘말려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자 다시 고향 제주로 내려와 첫사랑을 만난다는 내용의 스토리다.
이 드라마가 떠오른 이유는 다름 아닌 주인공 삼달이라는 캐릭터 때문이었다. 극중 삼달은 학창 시절 내내 고향을 지겨워했다. 사진을 배우고 싶었지만 제주에는 사진을 배우고 경험할 만한 인프라가 없었다. 카메라를 사달라고 엄마에게 울며불며 애원하던 삼달은, 어느날 육지를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며 다짐한다. 나중에 꼭 서울에 가서 성공한 포토그래퍼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삼달만큼의 결연한 다짐이 아니더라도 지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모두 한 번쯤은 삼달과 비슷한 마음을 품는다. 언젠가는 서울 혹은 더 넓은 지역으로 진출할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 드라마 속 삼달의 친구들도 한 번씩 서울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듯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다. 삼달과 친구들이 서울로 향했던 것처럼 서울과 지역 간에는 정보 격차가 있고, 경험할 수 있는 폭도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더 많은 것을 배우려면 수도로 나가야 한다는 현실은 2024년에도 유효하다.
의사의 집단행동을 둘러싼 수많은 쟁점이 있지만, 이 현상의 근본 원인은 ‘지역에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사에서 지역에서 중증 질환자들이 골든타임 내 진료를 받는 비율이 50%도 되지 않고, 우리나라 250개 지자체 중 98개가 응급의료 취약지라는 통계는 지역 의료의 현주소를 가리킨다. 안타깝고 아득한 현실이다. 그런 뉴스를 읽으며 삼달이가 떠올랐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일하고자 하는 청년은 몇 퍼센트나 될까. 그런 슬픈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1년에 의사가 받는 평균 임금은 일반 노동자가 받는 평균 임금의 4~5배라고 하는데, 지역에 의사가 오지 않아 연봉을 4억~5억 원까지 올려주겠다는데도 지원자가 없었다고 한다. 전체 시군구 중 32개는 필수의료기관이 없고, 전라남도와 경상북도, 섬이 많은 인천광역시는 3대 의료 취약 지구로 분류됐다. 지역에 의사가 없으니 의료 시설이 부족하고, 의료 시설이 부족하니 의사도 없는 굴레가 반복된다.
그렇다면 과연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의대생들이 지역에서 일을 하려고 할까? 단순히 돈을 얼마나 주는지와는 큰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모든 영역이 다 그렇겠지만 의료계는 정보와 경험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는 의사도 알고 진료를 받고자 하는 환자도 모를 리 없다.
정부는 의대생들을 많이 뽑아 지역 의대에 배치할 방침이라고 했다. 하지만 의대생들이 해당 대학을 졸업해도 그 지역에 남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게 문제다. 경상남도에서 면허를 취득한 초등교사는 경상남도에서만 일할 수 있는 것처럼, 의사도 면허를 취득한 지역에서만 일할 수 있게 한다거나, 그 지역에서 의학을 공부한 사람은 그 지역에서만 일할 수 있게 하자는 등의 ‘강제적 장치’를 고민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의미 있고 유효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보다 큰 차원에서의 고민도 필요하다고 본다. 당장의 효과를 바라기는 어렵지만 현재 대한민국이 떠안고 있는 숙제 같은 것 말이다. 바로 ‘지역균형’ 관점에서의 접근이다.
윤석열 정부는 울산에 공공병원을 설립하겠다고 했지만 경제적 가치 측면에서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해 취소했다. 눈앞의 효과만 생각하고 지역균형 관점에서는 고려하지 않은 방침인 듯해서 매우 아쉽다. 도전과 시도가 없으면 결과도 없다고 생각한다. 지역에 의료 시설을 확충하는 일은 당장 손해일지 몰라도 그런 투자로 인해 지역 의사가 배치되거나 서울까지 가서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지역에서 치료받을 기회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공공병원은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다. 앞으로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있어서 균형 잡힌 지역을 만들기 위한 방향성을 택하는 것이 결국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이다.
현재 최소한의 인력 배치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집단행동을 강행하고 있는 일부 의사들의 이기주의는 매우 안타깝다. 하지만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 이들에게 특정 지역에서 일하라고 강요하는 것 역시 불합리한 일이다. 강제적인 접근은 제1의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지역에 머무르고 싶고, 일하고 싶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수많은 삼달이들이 지역에 남을 것이다.
2024-03-18 [1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