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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봄 바다에서 듣는 차이콥스키의 '뱃노래'
친구와 함께 기장의 포구로 놀러 나갔다. 바다는 잔잔했다. 바다의 풍경 속에는 배가 있어야 한다. 아련히 멀리 있어 유람선인지 고기잡이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배가 한두 척 떠 있어 줘야 바다의 공식이 완성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배에 탄 어부든 손님이든 누군가는 모종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곁들인다. 그 상상을 입력하여 만든 노래나 기악곡을 우리는 ‘뱃노래(Barcarolle)’라고 부른다.
뱃노래는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어업 노동요로서의 뱃노래다. “어기 여차~” 하면서 노를 젓거나 그물을 당기고 고기를 잡는 풍경을 묘사한 노래다. 경기 민요인 ‘자진 뱃노래’, 조두남 작곡의 가곡 ‘뱃노래’, 러시아 민요 ‘볼가강의 뱃노래’ 같은 곡이다.
둘째는 강이나 바다에서 배를 띄워 놓고 즐기는 정취를 담은 음악이다. 우리나라의 ‘진도 아리랑’에 나오는 것처럼, “만경창파(萬頃蒼波)에 두둥둥 배 띄워 놓고, 저 달이 떴다 지도록 놀다 가세”라는 생각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꿈꾸는 최고의 휴식이다. 서양 음악에서의 뱃노래도 주로 이런 마음을 담고 있다.
대표적으로 ‘베네치아의 뱃노래’가 있다. 마치 곤돌라를 저어가는 것처럼 여유 있는 템포와 단조롭게 흔들리는 듯한 ‘강약약’의 리듬으로 편안한 정서를 표현한다.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중에 나오는 뱃노래와 베르디 ‘가면무도회’의 뱃노래 장면 등이 있다. 기악에선 멘델스존이 ‘무언가’에 삽입한 3개의 뱃노래가 잘 알려져 있으며, 그 외에도 포레, 알캉, 발라키레프, 글라주노프 등이 피아노곡으로 뱃노래를 썼다.
오늘 기장 해변에서 들은 곡은 차이콥스키의 뱃노래다. 1876년, 당시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로 있던 차이콥스키는 〈누벨리스트〉라는 음악 월간지에 짧은 피아노곡을 연재하게 되었다. 잡지에는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어울리는 짧은 시도 곁들여 수록하기로 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사계(seasons)’인데, 비발디의 작품과는 달리 네 계절이 아니라 열두 달을 다루고 있다. 모든 곡이 다 좋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6월 ‘뱃노래’와 10월 ‘가을의 노래’가 유명하다.
“해변으로 나가자, 거긴 파도가 우리의 다리에 입 맞추리라. 비밀스러운 슬픔을 담아, 별들이 우리를 비춰 주리니.” 알렉세이 플레세예프의 시와 차이콥스키의 서정적인 멜로디를 같이 음미할 수 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회색 풍경마저도 일순간 푸른 바다로 바꿔 버리는 마법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2024-06-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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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5월의 꿈, 시인의 사랑
5월이 되면 반드시 듣게 되는 음악이 있다. 일단 팝송 중에서 추억의 그룹 비지스가 부른 ‘5월 1일(First of May)’을 들어야 한다. 그건 5월을 맞이하는 개인적인 회고 의식과도 같다. 비지스를 듣고 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슈만(R.Schumann, 1810~1856)으로 간다. 그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op. 48)을 벗어날 수 없다.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의 음반을 다시 꺼내 든다. 첫 곡, ‘놀랍도록 아름다운 5월에’가 울려 퍼지면, 그제야 봄이 왔음을 제대로 인지하게 된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5월에, 온갖 꽃봉오리가 피어날 때
그때 내 가슴 속에도, 사랑이 움터 올랐지.
놀랍도록 아름다운 5월, 온갖 새들 노래할 때
그때 나 그녀에게 고백했네, 내 그리움, 내 갈망을.
가사는 하이네의 시집 〈노래의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곡을 만든 1840년에 슈만은 우여곡절 끝에 클라라와 결혼하게 되는데, 그 한 해 동안 무려 169곡의 가곡을 썼다. 〈시인의 사랑〉 외에도 〈미르테의 꽃〉 〈여인의 사랑과 생애〉처럼 독일 가곡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들을 쏟아냈다.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 슈만은 이렇게 썼다. “나는 가곡을 작곡할 때 늘 당신과 함께 있었습니다. 당신 같은 여인이 없었다면 절대 그런 음악을 만들 수 없었을 겁니다.”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스치는 장미꽃도 예사롭지 않고, 지나가는 새도 내 사정을 묻는 듯하다. 〈시인의 사랑〉은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든 감정, 그리움과 기쁨에서 시작하여 이별의 감지, 탄식, 질투, 자조, 절망, 회상으로 진행되는 사랑의 여정을 노래로 수놓았다.
제1곡 ‘놀랍도록 아름다운 5월에’에선 설레는 가슴으로 사랑의 시작을 얘기한다. 그 설렘은 이내 고독이 된다. 제6곡 ‘거룩한 라인강에서’부터는 이별의 불안감이 느껴진다. ‘나는 울지 않으리’라고 중얼거려보지만, 슬픔만 깊어진다. ‘꽃이라도 이 마음을 안다면’ 거기에 대고 하소연하고 싶어진다. 제10곡 사랑하던 사람이 부르던 ‘그 노래가 들려오면’ 심장이 미어지는 듯하다.
제12곡 ‘맑게 갠 여름 아침에’ 다시 옛 생각을 한다. 자는 중에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내가 울고 있었다’.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 16곡 ‘옛날의 쓰라린 노래’에서 ‘하이델베르크의 술통’보다도 더 큰 관을 짜서 거기에 추억을 묻어야겠다고 말하며 긴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무려 2분에 걸친 피아노의 후주가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연가곡이 끝난다. 더불어 봄날의 짧은 사랑 이야기도 끝난다.
2024-05-2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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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어머니가 가르쳐 준 노래
어버이날과 어린이날이 교차하는 5월이다. 아기들은 옹알이를 거쳐서 단어를 구사하게 되는데, 가장 처음 입을 떼는 말은 아마도 ‘엄마’라는 단어이다. 인간이 노래를 만들게 되면서 가장 많이 사용한 주제도 어머니였다. 그래서 수많은 사모곡(思母曲)이 생겨났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드보르자크가 1880년에 만든 가곡 ‘어머니가 가르쳐 준 노래(Songs my mother taught me)’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노래로 작곡한 것이지만 바이올린이나 첼로 독주로 들어도 좋다. 앞 소절만 들어도 이미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진하고 아름답다.
〈뉴욕타임스〉의 유명한 평론가이던 해럴드 숀버그는 드보르자크를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를 통틀어 가장 행복하고 가장 덜 강박적인 사람”이라 평했다. 그 말은 일리가 있다. 체코 시골의 푸줏간 집 아들이던 드보르자크의 삶은 전형적인 성공기처럼 보인다. 베토벤이나 슈만처럼 고통스러운 질병도 없었고, 바흐나 슈베르트처럼 그 시대에 인정받지 못한 사람도 아니었으며, 모차르트나 멘델스존처럼 요절하지도 않았다. 신앙심이 깊고 가정을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서 드뷔시나 바그너처럼 드라마틱한 연애도 하지 않았다. 한 발씩, 확고하게 명성을 다져 나갔다.
그러나 드보르자크라고 인생의 한구석에 왜 시련이 없겠는가? 그가 한참 자리를 잡아가던 1877년, 새로 태어난 딸이 이틀 만에 사망했고, 이어 한 살짜리 딸과 세 살 된 아들이 차례로 죽었다. 이건 시련이 아니라 운명의 저주라고 해야 할 만큼 참담한 일이었다. 망연자실한 드보르자크는 비통한 심정으로 ‘스타바트 마테르(라틴어 Stabat Mater, 슬픔의 성모)’를 작곡했다.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아들을 쳐다보며 서 있을 수밖에 없던 어머니의 마음을 음악으로 나타낸 곡이었다.
그리고 3년 후인 1880년, 오스트리아의 테너 구스타프 발터가 자신의 독주회에서 발표할 새로운 성악곡을 요청했다. 드보르자크는 체코의 시인 아돌프 헤이두크가 쓴 시집에서 7개의 시를 발췌해 〈피아노와 목소리를 위한 7개의 집시 노래〉 작품55를 완성했다. 오늘 듣는 곡은 이 가곡집에 4번째로 나오는 곡이자 가장 유명한 곡이다.
어머니가 가르쳐 준 노래, 사라진 그 옛날에.
어머니 눈가에는 눈물이 마를 날 없었지.
이제 내 아이들에게 그 멜로디를 가르친다네.
내 소중한 기억을 타고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네.
오래전 어머니가 가르쳐 준 옛 노래를 기억하며, 그 노래를 아이들에게 불러주고 싶던 아버지의 애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드보르자크 '어머니가 가르쳐 준 노래'.
2024-05-0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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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새의 노래', 피스, 피스, 피스!
4월 26일은 역사 속에서 두 개의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1986년 오늘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가 일어났고, 1937년엔 스페인의 게르니카 폭격 사건이 일어났다. 오래전 마드리드의 국립소피아왕비예술센터(왕비미술관)에서 ‘게르니카’ 그림을 실제로 보았을 때가 떠오른다. 가로 7미터, 세로 3미터가 넘는 흑백 톤의 그림이 주는 힘은 압도적이었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리지 않았다면 1937년 4월 26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시 쿠데타로 집권한 프랑코 장군은 스페인 내전을 벌여 권력을 잡았다. 1937년 오늘, 프랑코 측과 동맹을 맺은 독일의 콘도르 군단이 공화파의 거점 도시 게르니카를 융단폭격했다. 바스크 지방 작은 도시 게르니카에는 28톤이 넘는 폭탄이 쏟아졌고 무수한 양민이 불바다 속에서 죽었다. 이 소식을 들은 피카소는 참담한 마음으로 ‘게르니카’를 완성해 파리 세계박람회에 출품했다.
프랑코 독재 정권에 저항한 예술가는 피카소뿐 아니었다. 그 중심에는 ‘첼로의 전설’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도 있었다. 게르니카 폭격을 감행한 후 프랑코는 완전히 권력을 장악했고,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들였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카잘스는 프랑스 남단의 프라드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음악회를 통해 스페인의 민주화를 호소했다.
카잘스가 앙코르곡으로 가장 사랑한 레퍼토리는 ‘새의 노래(El cant dels ocells)’였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민요를 편곡한 것으로, 우리나라 ‘아리랑’ 같은 정서가 담긴 곡이다. 3분 정도의 짧은 멜로디지만 고국에 대한 사랑과 세상의 평화를 염원한 카잘스의 상징적 노래였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백발의 노인이 된 카잘스는 혼자서만 첼로를 연습할 뿐 무대에는 서지 않았다. 그런데 1971년 10월 UN 회의장에서 연주할 것을 요청받았다. 당시 95세의 카잘스는 연주 전에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난 40여 년간 공식적인 연주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해야 할 것 같군요. 카탈루냐 민요 ‘새의 노래’를 연주하겠습니다. 카탈루냐 새들은 하늘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피스(peace), 피스(peace), 피스(peace)!’ 그것은 바흐와 베토벤, 모든 위대한 음악가들이 사랑하고 찬미해 온 멜로디입니다. 너무나 아름답지요.”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예술은 ‘게르니카’ 같은 그림을 그려내고, ‘새의 노래’ 같은 음악을 남겨 놓는다. 그것은 어떤 말보다 오래도록 마음을 울린다.
2024-04-2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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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클래식은 커피를 사랑해
“아, 커피 맛은 정말 기가 막히죠. 수천 번의 키스보다 더 달콤하고, 맛 좋은 포도주보다 더 부드럽죠. 커피, 커피, 난 커피를 마셔야 해요. 내게 즐거움을 주려거든, 아! 커피 한잔을 채워 줘요.”
이 곡은 그 유명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만든 ‘커피 칸타타’에 나오는 노래 가사다. 가사나 곡조도 재미있지만 노래 주위를 나비처럼 맴도는 트라베르소 플루트(가로 플루트) 소리가 정말 멋지다. 종교음악의 대가인 바흐가 어쩌다가 이런 곡을 쓰게 되었을까? 그를 위해선 바로크 시대 유럽에 번진 커피 열풍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에티오피아, 예멘,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베네치아에 상륙한 커피는 순식간에 유럽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1645년 베네치아에 첫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고, 1652년에는 런던에 첫 커피하우스가 생겼으며, 파리, 함부르크 등 유럽 도시마다 커피가 최고의 트랜드 상품이 되었다. 바흐가 살던 독일의 라이프치히에도 몇 개의 커피하우스가 생겼는데, 그중에서 ‘치머만 커피하우스’는 바흐의 단골 쉼터였다. 이 카페에서 밀린 악보도 필사하고, 아마추어 앙상블 연주회도 가졌다.
그러던 바흐가 매우 이례적으로 세속적인 내용의 음악 한 곡을 완성했다. 원래 제목은 ‘가만히, 떠들지 말고(Schweigt stille, plaudert nicht)’이지만 흔히들 ‘커피 칸타타’로 부른다. 커피를 너무나 사랑하는 딸과 이를 못마땅해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냈다. 이 곡을 들으면 낙천적인 모습의 바흐가 그려진다. 커피잔을 들고서 “그래, 바로 이 맛이야!”라며 행복해하는 바흐 말이다.
어디 바흐뿐이랴,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할 것 없이 모두 커피를 최고의 벗처럼 여겼다. 베토벤은 “매일 아침 나는 최고의 벗을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다. 한잔의 커피에 담긴 60알의 원두는 내게 60개의 아이디어를 제공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커피광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커피는 세계인이 사랑하는 최고의 음료수였고, 한국 역시 커피 소비량에선 빠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최근 발견된 사료에 의하면 커피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 1884년 부산의 해관(지금의 세관)에 근무하던 민건호가 쓴 〈해은일록〉에 나와 있다. 다음 달 초 벡스코에선 부산시와 SCA(스페셜티 커피 협회) 공동 주최로 ‘월드 오브 커피&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부산’을 연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부산이 ‘한국 커피의 자존심’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바흐마저 음악으로 남겼듯, 커피는 그 자체로 역사이자 예술이다. 부산의 커피 문화가 산업적인 차원을 넘어 다양한 예술과 접목되기를 바란다.
2024-04-1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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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카르미나 부라나', 운명을 통과하는 인간의 노래
“오 운명이여, 그대의 변덕스러움이 달과 같구나. 언제나처럼 차올랐다가 또 이지러지는구나. 잔혹한 인생, 제 마음대로 괴롭히다가 어루만져 주네. 가난도 권력도 모두 얼음처럼 녹여 버리네…”
1895년 태어나 1982년 3월 29일 세상을 떠난 작곡가 칼 오르프의 명곡 ‘카르미나 부라나’. 그 첫 곡인 ‘오 운명이여’는 이런 가사로 시작한다.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부터 한국의 드라마와 CF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곡이다. 팀파니를 동반한 합창의 강력한 힘이 듣는 사람을 단박에 휘어잡는다.
독일 뮌헨에서 태어난 칼 오르프는 5세부터 첼로, 피아노, 오르간을 배웠고, 11세에 가곡을 작곡한 천재였다. 뮌헨음악원에서 작곡과 지휘를 공부한 후 만하임, 다름슈타트 등지에서 악장을 역임했다. 바로크 작곡가들의 작품을 편곡하기도 하고, 현대적인 곡도 꽤 썼지만, 1937년 ‘카르미나 부라나’를 발표하면서 이전의 작품을 모두 잊게 했다. 그만큼 결정적인 히트작이었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보이렌의 노래’라는 뜻이다. 1803년 독일 뮌헨 부근에 있는 보이렌 수도원에서 발견된 시가집에는 11~13세기에 활동하던 익명의 유랑 악사와 음유시인이 남긴 세속 라틴어 시가 250여 곡 들어 있었다. 오르프는 그중에서 24곡을 추려 3부의 세속 칸타타를 만들었다. 가장 유명한 첫 곡 ‘오, 운명이여’는 서곡에 해당하는 노래다. 고대와 중세 철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인용해서 운명의 변덕스러움과 가혹함을 얘기한다. 단순한 화음과 고전적인 멜로디를 사용했지만, 합창과 타악기가 원시적인 생명력을 느끼게 만든다. 강렬하고 복잡한 리듬도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곡들은 세상을 한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속을 살아가는 방법을 노래한다. 1부 ‘봄에’는 봄날의 정취와 사랑의 감정을 담았고, 2부 ‘선술집에서’는 교회와 성직자까지 마음대로 풍자하며, 3부 ‘사랑의 뜰’에선 세상의 마지막 위안을 사랑으로 치환한다. 운명이 준 상처에 탄식하던 영혼은 마지막 24번째 곡을 이렇게 맺는다. "만세, 세상의 빛이여. 만세, 세상의 장미여. 고결한 사랑의 여신이여."
운명은 강력하고 세상은 지리멸렬하다. 그러나 우리에겐 시대를 한탄할 자유가 있고, 술을 마시며 같이 떠들 친구가 있고, 봄과 사랑을 노래할 심장이 있다. 이로써 운명에 대항하리라! 거의 1000년 전의 사람들도 그렇게 삶을 통과해 나갔음을 ‘카르미나 부라나’가 알려 준다.
2024-03-2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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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현대 음악계를 이끄는 여성 작곡가들?
영국의 온라인 예술잡지 〈바흐트랙〉(Bachtrack)은 매년 내놓는 음악계 동향 보고서로 유명하다. 비록 영국과 미국에 치우친 경향은 있지만, 올해도 2023년 열린 공연 3만 1309개를 조사해서 가장 인기 있는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가장 많이 연주된 작품 등 다양한 통계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점은 현대음악 레퍼토리와 여성 작곡가 인기가 급상승했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2013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현대음악 공연이 약 6%에서 14%로 증가했다. 영국에선 6%에서 15%로, 미국에서는 7.5%에서 무려 20%로 증가했다. 여전히 고전-낭만주의 레퍼토리에 치우치고 있는 우리나라 클래식 무대와는 무척 대조적이다.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곡가 200명’을 집계했을 때, 2013년에는 여성 작곡가가 단 2명밖에 없었는데, 2013년엔 22명으로 늘어났다. ‘살아 있는 인기 작곡가 톱 텐(Top 10)’ 리스트에서도 여성 작곡가가 4명이나 들어 있다. 러시아의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미국의 캐롤라인 쇼, 영국의 안나 클라인, 그리고 자랑스럽게도 한국의 진은숙이 포함돼 있다.
한국에서도 여성 음악가의 몫이 커지기를 바라며, 오늘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작곡가 릴리 불랑제(Lili Boulanger, 1893~1918)의 곡을 들어본다. 나디아 불랑제와 동생 릴리 불랑제는 20세기 최고의 여성 작곡가였다. 언니 나디아 불랑제는 파리음악원 작곡가 교수로 있으면서 피아졸라, 거슈윈, 코플랜드 등을 가르쳤다. 영국 로열 필하모닉과 보스턴 심포니, 뉴욕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최초의 여성 지휘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디아는 항상 “동생의 작품에 비하면 내가 쓴 것은 하찮은 정도”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동생인 릴리는 1913년 프랑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로마대상’에서 여성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릴리는 어릴 때 폐렴을 겪은 후로 항상 몸이 약했다. 나중엔 병상에 누워 언니에게 음을 불러주면서 작곡했다고 한다. 그녀는 1918년 불과 25세로 세상을 떠났다. 모차르트보다도 10년이나 어린 나이였다. 릴리 불랑제는 워낙 이른 나이에 죽었기에 50여 곡밖에 남기지 못했지만, 오늘 듣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녹턴’ 같은 곡만 들어봐도 “아, 천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나이 18세 때 만든 곡으로, 봄날의 꽃처럼 애잔하게 남아 있다.
2024-03-1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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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프랑스 국가 작곡가는 누구인가?
프랑스의 국가(國歌), ‘라 마르세예즈’는 “세상에서 가장 살벌한 가사를 가진 국가”라는 평을 듣는다. “무기를 들어라, 시민이여! 대열을 갖춰라! 전진, 전진하자! 놈들의 더러운 피가 우리의 밭고랑을 적시도록….” 이 노래는 1792년 독일 연합군이 프랑스를 침공하려 했을 때 만들어졌다. 스트라스부르에 주둔하던 공병 대위 루제 드 릴이 작사·작곡한 것으로 알려졌고, 당시의 제목은 ‘라인 군대를 위한 전쟁 노래’였다.
노래가 입으로 전해져서 마르세유 의용병들이 파리에 입성할 때 군가처럼 부르게 되면서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라는 제목이 되었다. 이후엔 마치 우리나라의 ‘임을 위한 행진곡’처럼 민중에게 유명한 곡이 되었고, 1879년 프랑스 공식 국가가 되어 월드컵이든 올림픽이든 이 노래를 국가로 사용했다. 차이콥스키 ‘1812년 서곡’에서도 프랑스를 상징하는 멜로디로 인용되었다.
그런데 2013년에 엄청난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 귀도 리몬다가 작곡가 비오티의 작품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라 마르세예즈’ 선율과 똑같은 악보를 발견한 것이다. 곡의 이름은 ‘주제와 변주 C장조’. 비오티가 무려 11년 전인 1781년에 작곡해 놓은 곡이었다. 다만 악보에 적힌 “1781년 3월 2일”이라는 날짜의 필적이 비오티의 것과 조금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거나 두 곡의 멜로디가 너무나 닮았기 때문에 비오티든 루제 드 릴이든 한쪽이 빌려 쓴 것은 분명한데, 아직 프랑스의 공식 입장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조반니 바티스타 비오티(Giovanni Batistta Viotti)는 1755년 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 태어나, 당대의 거장인 가에타노 푸냐니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다. 이탈리아 궁정악단 바이올리니스트였다가 유럽을 돌며 연주 생활을 했다. 나중엔 파리에 머물면서 피에르 로드, 로돌프 크로이처, 피에르 바이요 같이 유명한 제자를 길러냈고, 무려 29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했다. ‘프랑스 바이올린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비오티는 바이올린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24년 3월 3일은 비오티가 세상을 떠난 지 딱 200주년 되는 날이다. 진실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만약 비오티가 원작자라면 프랑스는 200년 이상 잘못된 작곡가로 국가를 부르고 있는 셈이다. 이참에 비오티가 남긴 ‘주제와 변주 C장조’를 들어보자. 과연 어느 쪽 말이 진짜일까?
2024-02-2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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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랩소디 인 블루', 크로스오버 뮤직의 원조
지금으로 딱 100년 전인 1924년 2월 12일, 뉴욕 애올리언홀에선 ‘현대음악의 실험’이란 제목의 연주회가 있었다. 그 자리엔 라흐마니노프, 하이페츠, 스토콥스키 같은 음악계의 거물까지 참석했고, 제목처럼 20세기의 여러 가지 실험적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다. 청중이 서서히 지루해질 때쯤, 클라리넷의 글리산도(음과 음 사이를 미끄러지듯 연주하는 기법) 소리가 들리더니, 이때까지 생각하지 못한 신선한 음향이 홀을 채웠다. 당시 스물여섯 살의 청년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 1898~1937)이 작곡한 ‘랩소디 인 블루’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거슈윈은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악상을 떠올려서 2주 만에 이 곡을 완성했다고 한다. 원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작곡한 후, 작곡자 퍼디 그로페에게 부탁해 오케스트라로 편곡해 발표했다.
워낙 유명한 곡이니 만큼 좋은 음원이 많지만, 오늘은 영화 ‘판타지아’ 속 장면을 골랐다. ‘판타지아’는 디즈니사가 1940년 만들어 클래식 애니메이션의 신기원을 세운 영화다. 2001년이 되자 디즈니사는 속편이라 할 수 있는 ‘판타지아 2001’을 내놓았는데, 그 안에 ‘랩소디 인 블루’가 삽입되어 있다. 삽화가 알 허쉬필드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제임스 러바인이 이끄는 시카고 심포니가 음악을 맡았다.
거슈윈은 자신의 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음악은 그 시대와 사람들에 대한 사상과 영감을 노래해야 한다. 내 사람들은 미국인이고 내 시간은 현재다.” 그래서 이 곡이 “당시의 미국을 묘사하는 음악적 만화경” 같은 곡이라고 했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차이콥스키 이후 최고의 멜로디”라고 했으며, 지휘자 월터 담로슈는 “재즈를 귀부인으로 만들었다”라고 극찬했다. 세월이 지나도 ‘랩소디 인 블루’ 인기는 변함이 없다. 한국에선 오래전, 노영심이 쓴 ‘희망 사항’이란 곡의 마지막 부분에 인용되었고, 최근엔 레드벨벳의 ‘버스데이’에도 샘플링되어 쓰였다.
이후 거슈윈처럼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은 ‘크로스오버 뮤직’이라는 이름으로 무섭게 성장했다. 이제 단순히 장르를 섞는다고만 해서 가치가 있던 시대는 지나갔다. 섞는 작업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형태를 창조해야 가치가 있는데, 이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100년 전, 조지 거슈윈이 발표한 ‘랩소디 인 블루’는 오늘날도 여전히 고민해야 할 숙제를 던져 주었다.
2024-02-1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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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하이페츠의 '샤콘', 울기 좋은 날의 음악
매년 2월 2일이 되면 왠지 바이올린곡을 하나쯤 들어야 할 것 같다. 바이올리니스트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1875년 오늘 태어났고, 야샤 하이페츠가 1901년 오늘 태어났기 때문이다. 20세기를 통틀어 최고의 인기를 누린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는 제정 러시아의 빌나에서 태어났다. 세 살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해 여섯 살에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공개 연주회를 했다. 러시아가 혁명으로 요동치자 하이페츠는 미국으로 왔다. 극도의 집중력과 대담함, 가까이하기 힘든 위엄, 완벽한 컨트롤을 보여주며 ‘바이올린의 황제’로 군림했다. 그의 연주를 듣고 인디애나대학 교수로 있던 요제프 긴골드는 이렇게 말했다. “하이페츠는 항상 나의 우상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하이페츠의 초기 녹음을 들으며 자랐다. 하이페츠는 당시에도 이미 위대했다. 이제 내가 늙어서 그 음반들을 다시 들으며 생각해 보니 언제보다 더욱 위대하다.”
하이페츠는 RCA 레코드사와 함께 방대한 녹음을 남겨 놓았다. 그중에서 오늘은 비탈리의 ‘샤콘’을 같이 나누고 싶다. 안토니오 토마소 비탈리(Antonio Tomaso Vitali, 1663~1745)는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작곡가다. 당시에는 꽤 유명했지만 죽은 후에 사람들에게 잊혔고, 그의 음악 역시 역사 속에 묻혀 있었다. 이 곡이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은 1867년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도 다비드가 편곡해 발표하면서부터다. g단조의 낭만적인 선율과 드라마틱한 몰입감으로 주목받았지만, 정말 비탈리의 곡일까에 대해선 진위 논란이 일었다.
‘샤콘(chaconne)’은 17세기 남부 유럽에서 유행한 3박자의 춤곡 이름인데, 바로크 시대 기악 모음곡에 널리 쓰였다. 춤에서 벗어나 기악 영역으로 들어온 샤콘은 대단히 장중한 성격으로 변화했다. 그중에서도 비탈리의 ‘샤콘’은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에 나오는 ‘샤콘’이 지상을 떠나 우주로 빨려드는 듯하다면, 비탈리의 ‘샤콘’은 지상에 발을 붙인 인간의 통곡이다. 특히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가 리처드 엘새서의 오르간 반주로 녹음한 음원이 그러하다. 온몸을 감싸는 오르간 소리를 뚫고 절규하는 바이올린의 격정에 몸을 떨게 만든다.
오래전, 이 음반이 한국에서 CD로 처음 발매될 때 해설지를 썼는데, 그때 “지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과장된 제목이긴 하지만, 덕분에 비탈리 ‘샤콘’이 많이 알려진 것 같기는 하다. 드러내 놓고 울 수 없어서 혼자 웅크리고 있을 때, 곁에서 나처럼 울어줄 수 있는 음악이다.
하이페츠가 연주한 비탈리 '샤콘'.
2024-02-0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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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번스타인을 기억하는 이유
“예술은 답을 주는 대신 질문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상반된 답들 사이에서 긴장을 유발하는 역할을 한다.” 얼마 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개봉한 영화 ‘마에스트로:번스타인’은 이런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브래들리 쿠퍼가 감독과 주연을 맡아 위대한 지휘자 번스타인의 삶을 조명했다. 음악 세계보다는 사랑 이야기가 많아서 음악 애호가들은 섭섭할 수 있겠지만, 번스타인이라는 음악가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는 역할은 한 것 같다.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철학과 언어학을 전공한 후 음악계에 뛰어들었다. 뉴욕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가 된 그는 취임하자마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갔다. 공원에서 무료 음악회를 열어 지나가는 청중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텔레비전에 출연해 뉴욕필 청중 숫자를 세 배 이상으로 늘려 놓기도 했다. 당시 방송된 번스타인의 ‘청소년 음악회’ 시리즈는 에미상을 11회나 수상했고, 세계 40여 개국에 방송되었으며, 지금도 참고하는 스테디셀러다. 현재의 모든 ‘해설이 있는 음악회’는 번스타인 덕을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지휘자인 동시에 탁월한 작곡가였다. 정통적인 클래식 곡부터 ‘온 더 타운’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같은 뮤지컬까지 각종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음악의 즐거움〉 같은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도 올랐다. 언론은 그를 두고 ‘르네상스맨’ 또는 ‘음악의 피터팬’이라 표현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그는 남달랐다. 유대인이면서도 좌파 성향을 지녔고, 가정을 사랑했지만 양성애자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의 음악평론가 해럴드 숀버그는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두 가지 속성을 항상 같이 보여주었다. 한편으로는 베토벤과 현대음악에 몰두한 ‘머리 긴 음악가’의 모습이었으며, 또 하나는 소년 같고, 적당히 비속어도 사용하며, 재즈를 좋아하고, 도시적 배경을 가진 모습이었다. 그 어떤 위대한 출판물도 번스타인이란 인물처럼 미국의 음악적 풍경을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했다.”
영화에서 인용한 말처럼, 번스타인은 삶과 예술의 방식에 대해 끝없이 질문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상반된 대답 사이를 오가며 긴장과 타협을 추구했고, 그 속에서 참으로 다양한 성과를 보여준 사람이었다. ‘마에스트로’라는 존칭은 이럴 때 붙이는 말인 것 같다. 21세기 한국 땅에서도 새로운 질문으로 무장한 젊은 지휘자들을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영상 한 편을 보탠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중 마리아
2024-01-1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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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2024년을 빛낼 작곡가는 누구?
매년 새해가 되면 탄생 몇 주기, 사망 몇 주기 하는 식으로 올해의 음악가를 거론한다. 지난해는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이어서 그의 음악이 자주 무대에 올랐다. 이런 것을 상업적인 기획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눈 흘길 것까지는 없다. 음악은 창작물을 연주로 재현하는 예술이니만큼, 이렇게라도 기념하면서 한 번 더 가치를 알아보는 기회로 삼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2024년은 유난히 많은 음악가가 리스트에 올라 있다. 탄생 기념부터 살펴보자면, 작곡가 요제프 수크, 아르놀트 쇤베르크, 거스테이브 홀스트, 찰스 아이브스가 탄생 150주년을 맞는다. 특히 오스트리아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와 체코 작곡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는 탄생 200주년을 맞게 되니 두 사람에게 집중 조명이 이루어지리라 본다.
사망 주기로 보면, 이탈리아 작곡가 조반니 비오티가 사망 200주년을 맞는 해다.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의 사망 100주기이며, 이탈리아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와 페루초 부소니도 사망 100주기가 된다. 게다가 그 유명한 베토벤의 〈장엄미사〉와 교향곡 9번 ‘합창’이 초연 200주년을 맞는 해이며,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와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도 초연 100주년을 맞으니, 열거하자면 밤샐 것 같은 분위기다. 이에 대해선 어차피 올해 내내 우려먹을 태세이니, 오늘은 한 명만 소개하기로 한다.
페루초 부소니(1866~1924)는 작곡가보다는 편곡자로 더 유명하다. 특히 부소니가 편곡한 바흐의 작품들은 피아니스트가 매우 사랑하는 레퍼토리다.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1949년부터 시작한 부소니 콩쿠르도 명성을 자랑한다. 한국의 피아니스트 문지영과 박재홍이 각각 2014년과 2021년에 이 대회의 우승자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부소니는 탁월한 작곡가였다. 그는 7세부터 피아노 리사이틀을 시작하여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이미 200여 개의 작품을 썼다. 피아노 소품부터 교향곡과 오페라까지 300개가 넘는 카탈로그를 자랑하는 작곡가였다. 그중에서 BV(부소니 작품번호) 237번, 〈쿨타셀레-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핀란드 민요에 의한 10개의 변주곡〉을 골랐다. ‘쿨타셀레(Kultaselle)’는 핀란드어로 ‘사랑하는 이에게’라는 뜻이다. 부소니는 헬싱키음악원 감독으로 있던 1889년에 게르다라는 여인을 만나 첫눈에 빠져들었다. 그는 이 곡으로 사랑을 고백했고, 곧 결혼하여 평생을 같이했다. 사망 100주기를 맞아 부소니의 작품이 다시 조명되기를 바라며, 그의 사랑가로 새해를 시작한다.
2024-01-04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