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5월의 꿈, 시인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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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프리츠 분덜리히가 부른 <시인의 사랑> 음반 표지. 조희창 제공 프리츠 분덜리히가 부른 <시인의 사랑> 음반 표지. 조희창 제공

5월이 되면 반드시 듣게 되는 음악이 있다. 일단 팝송 중에서 추억의 그룹 비지스가 부른 ‘5월 1일(First of May)’을 들어야 한다. 그건 5월을 맞이하는 개인적인 회고 의식과도 같다. 비지스를 듣고 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슈만(R.Schumann, 1810~1856)으로 간다. 그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op. 48)을 벗어날 수 없다.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의 음반을 다시 꺼내 든다. 첫 곡, ‘놀랍도록 아름다운 5월에’가 울려 퍼지면, 그제야 봄이 왔음을 제대로 인지하게 된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5월에, 온갖 꽃봉오리가 피어날 때

그때 내 가슴 속에도, 사랑이 움터 올랐지.

놀랍도록 아름다운 5월, 온갖 새들 노래할 때

그때 나 그녀에게 고백했네, 내 그리움, 내 갈망을.

가사는 하이네의 시집 〈노래의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곡을 만든 1840년에 슈만은 우여곡절 끝에 클라라와 결혼하게 되는데, 그 한 해 동안 무려 169곡의 가곡을 썼다. 〈시인의 사랑〉 외에도 〈미르테의 꽃〉 〈여인의 사랑과 생애〉처럼 독일 가곡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들을 쏟아냈다.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 슈만은 이렇게 썼다. “나는 가곡을 작곡할 때 늘 당신과 함께 있었습니다. 당신 같은 여인이 없었다면 절대 그런 음악을 만들 수 없었을 겁니다.”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스치는 장미꽃도 예사롭지 않고, 지나가는 새도 내 사정을 묻는 듯하다. 〈시인의 사랑〉은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든 감정, 그리움과 기쁨에서 시작하여 이별의 감지, 탄식, 질투, 자조, 절망, 회상으로 진행되는 사랑의 여정을 노래로 수놓았다.

제1곡 ‘놀랍도록 아름다운 5월에’에선 설레는 가슴으로 사랑의 시작을 얘기한다. 그 설렘은 이내 고독이 된다. 제6곡 ‘거룩한 라인강에서’부터는 이별의 불안감이 느껴진다. ‘나는 울지 않으리’라고 중얼거려보지만, 슬픔만 깊어진다. ‘꽃이라도 이 마음을 안다면’ 거기에 대고 하소연하고 싶어진다. 제10곡 사랑하던 사람이 부르던 ‘그 노래가 들려오면’ 심장이 미어지는 듯하다.

제12곡 ‘맑게 갠 여름 아침에’ 다시 옛 생각을 한다. 자는 중에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내가 울고 있었다’.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 16곡 ‘옛날의 쓰라린 노래’에서 ‘하이델베르크의 술통’보다도 더 큰 관을 짜서 거기에 추억을 묻어야겠다고 말하며 긴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무려 2분에 걸친 피아노의 후주가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연가곡이 끝난다. 더불어 봄날의 짧은 사랑 이야기도 끝난다.

슈만 <시인의 사랑>-프리츠 분덜리히. 슈만 <시인의 사랑>-프리츠 분덜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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