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김호중이 까발린 공권력의 민낯

임광명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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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곳곳에서 법치 건강성 심각하게 훼손

뺑소니 ‘김호중 사건’서 나타난
‘사고 후 잠적’ ‘술 타기 수법’ 등
음주운전 처벌 회피 꼼수 횡행

진술 번복에 조직적 증거 인멸
휴대전화 비밀번호 비공개 등
사법 방해에도 처벌 쉽지 않아

‘우기고 버티면 된다’ 생각 만연
검찰 뒤늦게 법 체계 정비 시도
엄중한 단죄로 법치 바로 세워야

지난 23일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 걸려 있던 ‘월드 유니온 오케스트라 슈퍼 클래식 : 김호중&프리마돈나’ 공연 현수막. ‘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김호중 씨는 구속영장이 신청된 상황임에도 이날 공연을 강행했다. 연합뉴스 지난 23일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 걸려 있던 ‘월드 유니온 오케스트라 슈퍼 클래식 : 김호중&프리마돈나’ 공연 현수막. ‘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김호중 씨는 구속영장이 신청된 상황임에도 이날 공연을 강행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오전 2시께 대전의 한 아파트 야외주차장. 승용차 한 대가 주차된 차량 7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운전자는 사고 직후 차를 버려둔 채 사라졌다. 경찰은 차 번호를 통해 운전자가 A 씨임을 확인했지만, 그는 휴대전화도 꺼놓고 잠적했다가 이틀 뒤에야 경찰서에 나타났다. A 씨는 음주 사실을 강하게 부인했고, 음주 측정에서도 혈중알코올 수치는 나오지 않았다. 끈질긴 추궁에 A 씨는 마지못해 “맥주 2잔 마셨다”라고 밝혔으나, 경찰은 혐의 입증에 애를 먹고 있다.

■ 꼼수의 전형

이쯤이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트로트 가수 김호중 씨다. 김 씨는 지난 9일 오후 11시 40분께 서울의 한 도로에서 택시를 충돌하는 사고를 낸 뒤 달아났다가 17시간 후 경찰에 출석했다. A 씨처럼 그도 처음엔 음주 사실을 부인하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시인했고, 이후 다른 의혹들까지 불거지면서 사고 보름 만인 지난 24일 구속됐다.

A 씨와 김 씨, 두 사람에게서 일정한 패턴이 보인다. ‘음주운전 뺑소니’ 혐의를 받는 사고를 낸 후 잠적했다가 몸에서 알코올 성분이 다 빠져나간 한참 뒤에 경찰에 자진 출석한 것이다. 사고 당시 음주 정도를 확인하지 못하게 하려는 수법이다. 아는 사람은 안다. 이는 음주운전 관련 처벌을 피하려는 전형적인 공식이라는 것을.

실제로 음주 측정을 거부해 법망을 빠져나가는 운전자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게 세간의 지적이다. 경찰이 사고 현장에서 음주 측정을 요구했을 때 이를 거부하면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상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김 씨처럼 아예 사고 현장을 벗어나면 음주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뺑소니까지는 모르더라도 최소한 음주 혐의는 벗어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SNS 등 온라인에서는 음주운전 처벌을 피하는 정보들이 횡행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법망 피하는 법을 자문해 주는 속칭 ‘음주 구제 일타 변호사’도 공공연히 활동하고 있다.

■ 사법 방해?

그런 사실을 고려한다손 치더라도 김 씨의 사례는 훨씬 교묘하고 치밀하다. 김 씨는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도주했고 자택이 아닌 한 호텔에 은신해 있었다. 그는 17시간이 지나 몸에서 알코올이 모두 해독된 뒤에야 나타나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 사이 매니저가 김 씨의 옷을 입고 나타나 거짓 자백을 했다. 소위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김 씨 소속사의 또 다른 직원은 김 씨가 몬 차의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없앴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자신이 삼켰다고 진술했다. 김 씨와 소속사의 조직적인 증거 인멸 행위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경찰 조사에 임하는 김 씨의 태도도 문제가 됐다. 처음엔 “유흥업소를 방문한 것은 맞지만 술은 마시지 않았다”고 말했다가, 음주에 대한 여러 정황이 드러나자 “술잔에 입만 댔고 마시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다 결국엔 “술을 마신 것 같다”면서 “양주는 거의 손도 안 대고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셨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지만, 경찰에 휴대전화를 제출하지 않다가 영장을 통해 압수되자 비밀번호를 온전히 알려주지 않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모습도 보였다. 그러면서 김 씨는, 심지어는 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태에서도, 예정된 수 차례의 콘서트를 강행했다. 해당 콘서트들은 못 해도 수십억 원의 티켓 매출이 예상됐다.

김 씨의 행위가 공권력을 기망하는 사법 방해에 해당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고가 발생하고 그 뒤 조사 과정에서 보인 김 씨의 태도가 공권력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우기고 버티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한 현 세태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 처벌은 미미

문제는 우리나라의 공권력이 그런 오만함과 무도함을 제대로 응징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2017년 B 씨는 운전 중 음주단속에 걸리자 경찰을 뿌리치고 편의점에 들어가 소주 한 병을 들이켰다. 음주 측정 거부 후 추가로 술을 마시는, 운전 시점의 음주량 확인을 무력화하기 위한 이른바 ‘술 타기 수법’이다. 결국 B 씨의 음주운전 사실은 입증되지 못했고, 경찰이 궁여지책으로 적용한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 역시 무죄로 결론 났다.

운전자 바꿔치기에도 법원의 처벌은 대체로 미온적이다. 실제로 2023년 광주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도 자신의 모친과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한 C 씨에 대해 법원은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음주운전 사고를 낸 차량의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없애는 행위에도 대부분 집행유예 등 낮은 형량이 선고됐다.

김 씨와 관련해 이런 저간의 사정 때문에 경찰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죄가 아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상죄를 김 씨에게 적용할 방침이다. 위험운전치상죄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운행할 수 없음에도 차량을 운행해 사람을 다치게 한 데 따른 처벌로, ‘1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김 씨의 경우 사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위험운전치상죄에 따르면 혈중알코올농도 기준과 상관없이 음주 자체가 위험운전에 영향을 미쳤다면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입증하기가 만만치 않다. 김 씨가 음주의 영향으로 정상 운전이 곤란한 상태였고, 그게 원인이 돼 사고가 발생했음이 증명돼야 하기 때문이다.

■ 무기력한 법

조직적인 증거 인멸 등 죄질이 나쁘고 수사기관을 농락하며 사법 방해를 일으킨 정황이 뚜렷해도 엄중한 처벌이 사실상 어렵다. 비슷한 문제가 다른 나라라고 없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선진국에선 관련 처벌 조항을 사전에 마련해 놓았다. 가까운 일본이 2013년 ‘과실운전치사상 알코올 등 영향 발각 면탈죄’를 도입한 게 그 사례다. 이는 음주운전 사실을 숨기려고 도피·잠적하거나 추가 음주를 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한참 뒤처져 있다. 대검찰청은 지난 20일에야 ‘술 타기 수법’ 등 음주 측정 방해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어 달라고 법무부에 건의했다. 아마도 ‘스타 가수’ 김 씨의 사건이 아니었다면 그런 건의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법 당국이 관련 법 체계를 완비하려는 노력을 왜 좀 더 일찍 하지 않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요컨대, 건강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우리나라 법 체계와 공권력의 민낯이 김 씨 사건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법 체계는 세계 최고다. 그러나 빠져나갈 구멍도 세계 최고다”라는, 결코 웃지 못할 우스개가 세간에 통용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언제까지 이런 황당한 말에 고개를 끄덕여야 하나.


임광명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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