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5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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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필균(1954~ )

산다는 것이

어디 맘만 같으랴.

바람에 흩어졌던 그리움

산딸나무 꽃처럼

하얗게 내려앉았는데

5월 익어가는 어디쯤

너와 함께 했던 날들

책갈피에 접혀져 있겠지.

만나도 할 말이야 없겠지만

바라만 보아도 좋을 것 같은

네 이름 석 자.

햇살처럼 눈부신 날이다.

-시집 〈내게 말 걸어주는 사람들〉(2021) 중에서

헤어진 연인을 다시 보게 되는 일은 참 쓸쓸한 일이다. ‘만나도 할 말이 없게’ 되는 그 이상한 거리감, 그 어색함. 한때 얼마나 사랑한다고 되뇌고 주억거렸었던가! 사랑의 기억들은 ‘책갈피에 접힌’ 화첩처럼 애틋하게 남아 있지만, 헤어진 시간은 입을 막고 눈을 가려 사람을 주춤하게 한다. 먹먹한 마음 위로 쏟아지는 저 ‘5월의 눈부신 햇살’에 찡그린 웃음을 짓고 돌아서고야 마는 인연의 멍울.

사랑의 깊이는 헤어진 시간으로 잴 수 있다. 결코 잊을 수 없던 ‘네 이름 석 자’도 ‘바람에 흩어져’ 사라져간다. 어디에도 사랑했음을 증명할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퇴색한 그리움 속에서 5월의 ‘산딸나무 꽃이 하얗게 내려앉’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쓸쓸함이 물처럼 차오른 가운데 ‘햇살처럼 눈부신 날’은 왜 길기만 할까? 무심한 5월이 하염없다.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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