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일필일침] 영화의전당-수영강 연계 프로그램 모색하라

정달식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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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지하차도 건설 올해 10월께 공사 시작
수영강 활용한 특별한 공연 기획 필요

BIFF 초청 배우들 강 통해 진입 구상
F1963 이어지는 연결 길 조성해 볼 만

강과 문화, 공원 어우러진 공간 가능
영화제 새로운 30년 도약 발판 될 수도

중국 저장성의 대표 관광지 항저우(杭州)는 우리에겐 제법 낯익다. 지난해 열렸던 하계 아시안게임 개최지가 바로 항저우여서 일 게다. 관광객 사이에선 “항저우에 가서 서호(西湖)를 보지 않으면 항저우에 갔다 왔다고 할 수 없고, 서호에 가서 ‘인상서호’(印象西湖)를 보지 않으면 서호에 갔다 왔다고 할 수 없다”라는 말이 회자된다. 서호는 항저우시 서쪽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다. 인상서호는 이곳에서 펼쳐지는 수상 뮤지컬로 영화 ‘붉은 수수밭’ ‘홍등’으로 유명한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했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와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져 낭만적이면서도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놀라운 것은 호수 위에 무대를 세우고 그 위에 10cm 정도의 물이 채워진 상태에서 수백 명의 출연진이 연기를 펼친다는 점이다. 물 위를 걸으며 공연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환상적이다. 기발한 상상력과 자연이 결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 게 바로 인상서호인 셈이다.


우리는 흔히 부산을 항구 도시, 해양 도시라 한다. 강과 하천을 끼고 있어 때로는 물의 도시라 칭한다. 물의 도시란 물이 공간의 형성과 변화에 영향을 주면서, 그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는 도시를 말한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베니스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프랑스 파리와 일본 도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도시는 수변 공간을 중심으로 도시의 역사적 맥락을 이어 나감과 동시에, 삶 속에 수변 공간이 형성돼 도시를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든다.

그렇다면 부산도 그럴까? 과거 부산은 크고 작은 강과 하천이 언덕과 조화를 이루며 그 속에서 삶이 공존했다. 부산 도심엔 수영강과 동천, 그리고 보수천을 비롯한 다수의 크고 작은 하천이 흘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바다로 흐르는 대다수의 하천이 복개돼 단지 해안 공간 중심의 해양 도시로만 인식될 뿐이다. 도로로 인해 생활 공간과 수변은 단절됐고, 물 공간 특유의 장소성을 가진 문화나 축제도 쉬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아이러니하게도 규모 있는 강이나 하천 말고는 우리 삶, 우리의 일상 가까이서 냇가나 실개천 같은 수변 공간을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동안 부산의 수변은 시민의 것이 아니었다.

10여 년간 부산시 숙원사업이었던 영화의전당 지하차도 건설이 최근 실시설계가 마무리돼 이르면 올해 10월께 공사가 시작된다. 영화의전당과 APEC나루공원 사이 차로를 지하차도로 만들고 지상 구간은 공원, 광장 등을 조성하는 것으로, 2026년 연말께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열리는 영화의전당과 그 주변은 도심에 강이 흐르는 부산의 수변 이미지를 함축한 곳이다. 하지만 영화의전당은 차로에 둘러싸여 보행로를 비롯해 공간이 오랫동안 단절돼 있었다. 이번 공사를 통해 영화의전당은 나루공원-수영강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돼 향후 수변 공간 접근성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서 하는 얘기다. 수영강에서 인상서호 같은 특별한 공연이 펼쳐진다면 어떨까? 오스트리아 호반 도시 브레겐츠의 야외 오페라 같은 공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축구 경기장으로 사용되는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의 플로팅 플랫폼처럼 수상 무대를 만들어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BIFF 개폐막식 때 초청 배우들이 수영강을 통해 영화의전당으로 진입하는 것도 생각해 봄 직하다. 그동안 영화제가 한정된 공간에서 열리다 보니, 개폐막식 때 부산을 제대로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었다. 수영강에 덱을 설치해 영화의전당에서 나루공원-수영강-F1963으로 이어지는 길도 조성해 볼 만하다. 영화제 기간 외국인들이 부산을 찾았을 때 영화만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수영강에서 공연을 즐기고 인근 F1963에서 전시를 본다고 상상해 보라. 이 공간은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강과 문화, 공원이 한데 어우러지는 부산 대표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BIFF는 물론이고 부산이란 도시의 인지도도 높아질 것이다.

BIFF는 부산이란 도시가 내세울 만한 대표적인 행사다. 올해로 29회째를 맞는다. 수변 공간과의 연계는 새로운 30년의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될 수도 있다. 부산시와 BIFF조직위원회, 영화의전당이 합심해 새로운 기회의 출발점인 영화의전당-수영강 연계 프로그램을 지금부터 꼼꼼하게 챙겨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하차로 완공까지는 2년 정도 남았다. 연계 프로그램을 준비하기엔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다. 세계적인 문명비평가 제러미 리프킨은 “물을 다스리는 게 아니라 물과 협력할 방법을 찾으라”라고 말했다. 그동안 부산의 수변이 시민의 것이 아니었다면, 이제 시민에게 그 기회를 부산시가 만들어 주어야 한다. 수변 공간과 연계한 질 높은 프로그램 개발을 기대한다.


정달식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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