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끝 모를 ‘5‧18’ 왜곡, 아물지 못하는 오월의 아픔

김건수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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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유튜브 등 다양한 형태로 기승
사회적 관심 모아 제재 강화할 필요

1980년 5월 광주의 기록 영상을 갈무리한 사진. 5·18 기념재단 제공 1980년 5월 광주의 기록 영상을 갈무리한 사진. 5·18 기념재단 제공

5‧18민주화운동이 오늘로 44주년을 맞았다. 긴 세월 흘렀어도 아물지 못한 아픔이 여전하다. 5‧18에 대한 끝 모를 왜곡과 폄훼, 조롱과 멸시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청소년의 게임 속 소재로 차용돼 충격을 안겼다. 5‧18은 지독한 편견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 청소년 즐기는 게임까지 침투

얼마 전 ‘그날의 광주’라는 역사 게임이 논란에 휩싸였다. 청소년들이 즐기는 개방형 게임 플랫폼에 올라와 1만 명 넘게 이용한 인기 게임이다.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가 배경이고, 이용자가 정부 혹은 시민군을 선택해 진행하는 방식이다. 군인과 경찰이 되면 ‘시민 폭동이 일어났으니 막으라’는 공지에 따라 죽도나 곤봉, 총으로 시민들을 살상하게끔 돼 있다. 북한군이 광주에 잠입해 활동한다는 허위 사실도 그대로 담겼다.

5‧18을 왜곡한 이 게임은 다행히 부산에 사는 한 초등학생의 용감한 제보로 세상에 알려졌다. 게임 제작자 등이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됐고, 현재 게임은 삭제된 상태다.

그런데 이후에 제보 학생을 상대로 한 2차 가해가 발생했다. 그 학생을 조롱하는 내용의 또 다른 가상현실 게임이 해당 플랫폼에 올라온 것이다. 실상을 왜곡한 것도 모자라 공공의 감시라는 공적 영역까지 위협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심각한 사안이다.


현재는 삭제된 메타버스 게임 ‘그날의 광주’ 게임 캡처. 현재는 삭제된 메타버스 게임 ‘그날의 광주’ 게임 캡처.

■ 우후죽순 확산, 못 미치는 검열

개방형 게임 플랫폼은 누구나 게임을 만들어 올릴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게임을 즐기는 수많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5‧18 왜곡, 나아가 역사 왜곡에 노출돼 있다. 게임을 만드는 사람도, 그걸 즐기는 사람도 대부분 미성년자다. 비판적 사고와 신념 체계를 제대로 갖추기 이전이라 5‧18에 대한 편향된 시각이 사실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크다.

이런 왜곡이 지속해서 발생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앞서 말한 플랫폼의 또 다른 게임 중에는 일본군이 독립운동가와 시민을 죽이는 얼개를 가진 것도 있다. 중복 이용자가 60만 명이 넘은 뒤에야 삭제됐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가짜’를 ‘진짜’로 여기고 평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실로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플랫폼 업체는 민감한 내용의 게임 제작을 금지한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걸러내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자체 검열 의지가 투철하지도 않고,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지는 콘텐츠를 따라잡기엔 검열 기술이 미흡한 측면도 있다.


최근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편향적 시각이 담긴 청소년 게임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이는 부산의 한 초등학생이었다. 공익 제보를 통해 역사 왜곡을 막은 모범적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연합뉴스 최근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편향적 시각이 담긴 청소년 게임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이는 부산의 한 초등학생이었다. 공익 제보를 통해 역사 왜곡을 막은 모범적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연합뉴스

■ 방식도 갈수록 새로워져

5‧18은 미완의, 그리고 미지의 역사다. 아직 규명되지 못한 부분도 있고,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영역도 있다. 그런데 가장 안타까운 게 기본적인 팩트조차 어긋난 잘못된 내용들이 세상에 퍼지는 일이다. 이를 바로잡는 게 시급하다.

우리 사회에 퍼진 유언비어를 기반으로 40년 이상 지속 중인 5‧18 왜곡과 폄훼의 대표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한군 개입설, 시민 폭동설, 군 자위권 행사 주장, 헬기 사격 관련, 가짜 유공자설, 지역 비하 등의 표현. 대부분 ‘거짓’으로 밝혀진 것들이다. 북한 침투설의 경우, 2022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북한 특수군 ‘광수’로 지목된 인물을 직접 만나 공개적인 증언 기회를 마련한 결과, 근거 없는 것으로 정리된 바 있다.

5‧18 특별법은 이런 허위사실의 유포를 금지한다. 위반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받는다. 현재 왜곡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례가 6건, 고발 조치가 이뤄진 경우가 5건이다. 왜곡의 방식은 ‘도서 출판·배포’ ‘강의 등 공식 발언’ ‘언론 보도’ ‘게임 제작’ 등으로 과거에 비해 다양해졌다.

법정으로 간 사례는 이 정도지만, 5·18 왜곡은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 곳곳에 침투 중이다. 5·18기념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인터넷 포털과 커뮤니티, 유튜브에서 확인된 5‧18 왜곡 게시물만 1530건에 달했다. 이 중 삭제된 게 1209건, 그러니 아직도 많은 게시물이 가상공간에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5·18 왜곡이 각종 플랫폼에서 기승을 부리는 양태는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강원 지역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15일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 지역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15일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제재 강화·근절 방안 마련을

문제는 이를 막아낼 방안이 제한적이라는 데 있다. 모니터링과 검열의 한계, 부족한 예산 등 현실의 벽이 높은 탓이다. 청소년 게임까지 파고든 마당에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우선 사회적 관심이 모여야 하고 강력한 제재를 위한 공감대 형성의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1980년대 한국 언론은 5·18의 참상을 외면한 과오가 있다. 시민 폭동설과 북한 개입설 같은 당시 신군부가 주도한 왜곡을 비판 없이 전파했다. 그 무책임의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언론이 양심의 회복을 통해 5·18 왜곡을 바로잡는 데 앞장서야 하는 이유다.

이와 함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5·18민주화운동 교육도 시급하다. 이번에 논란이 된 게임의 제작자가 청소년이라는 정황이 나왔다. 미래 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교육과 학습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5·18 왜곡을 막고 진실을 알리는 시대적 책무의 진정한 시작으로 삼아야겠다.

김건수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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