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병역특례 손볼 때 됐다

강윤경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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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평성 논란·병역자원 감소 개선 필요
국위 선양 BTS 멤버 7명 전원 군 복무
국방부 TF 구성해 연내 혁신 방안 발표


대한민국에서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나는 이슈 두 가지가 있다. 병역과 학력이다. 특혜의 ‘특’자라도 거론되는 날에는 ‘별의 순간’은 한순간 물거품이 되고 공직에서 낙마하는 건 시간문제다. 연예인이라면 활동 중단을 각오해야 한다. 그 신성불가침 영역의 하나인 병역에 제도적으로 특혜를 부여한 게 병역특례(보충역)다. 이 때문에 병역특례는 늘 사회적 논란거리였다. 이기식 병무청장이 최근 병역특례제도 폐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논란에 불을 붙였다. 방탄소년단(BTS)도 군대에 가는 마당에 예술·체육인 특례를 없앨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병역특례제도를 시대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부산 수영구 부산병무청 병역판정검사장에서 검사 대상자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 수영구 부산병무청 병역판정검사장에서 검사 대상자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끊이지 않는 공정성·형평성 논란

병역특례제도는 1973년 잉여 병역자원 해소, 국가 인적자원의 효율적 활용, 예술·체육인 육성을 통한 국위 선양의 목적으로 도입됐다. 공중보건의사나 전문연구·산업기능요원은 공익적·산업적 측면에서 필요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예술·체육요원은 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체육 분야에서는 올림픽 금·은·동메달, 아시안게임 금메달 수상 때 혜택을 받는다. 예술 분야에서는 국제예술경연대회 2위 이내, 국내예술경연대회 1위, 중요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 이수자가 해당한다.

문제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지금에도 국위 선양을 내세워 특혜를 주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프로 선수들이 아마추어 선수들을 상대로 금메달을 땄다고 병역을 면제해 주는 게 공정하냐는 논란이 가장 컸다. 한국 야구 대표팀이 ‘2022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는데 출전국이 8개에 불과했고 심지어 한 경기도 뛰지 않은 선수들까지 병역 면제를 받았다. 누가 봐도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국제 대회에 ‘급’을 매기는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도 뒤따른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롤러스케이트 남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1위를 달리던 한국 대표팀 정철원 선수가 결승선 앞에서 금메달을 예감하고 두 팔을 번쩍 치켜들다 추격하던 대만 선수가 마지막에 왼발을 뻗어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는 바람에 은메달에 머물렀다. 정철원은 동료 선수 최인호와 함께 0.01초 차로 금메달에만 주어지는 병역특례 혜택을 놓쳤다.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그에게 ‘군대나 가라 ㅋㅋ’는 조롱과 비난이 쏟아졌다.


2023년 10월 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인근 사오싱 야구·소프트볼 스포츠센터 제1구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대만을 물리치고 우승한 대한민국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10월 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인근 사오싱 야구·소프트볼 스포츠센터 제1구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대만을 물리치고 우승한 대한민국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BTS도 군 복무하는데…

2030 월드엑스포 부산 유치 운동 중에 BTS에게 대체 복무의 길을 열어 줘야 한다는 주장이 부산시를 중심으로 제기됐다. 2022년 7월 부산엑스포 홍보대사로 위촉되고 10월 ‘2030 부산엑스포 유치 기원 콘서트’를 개최하면서였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직접 나서 대통령실에 시행령 변경을 요청하기도 했다. BTS가 군에 복무하는 것보다 엑스포 유치를 위해 적극 뛰는 것이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길이라는 취지였다. 병역 면제를 받은 다른 체육·예술인과 비교해도 국위 선양의 기여도만 보면 BTS가 1순위일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대중예술에 대한 차별 등 병역특례제도가 모순투성이라는 논란이 뒤따랐다. 그렇지만 BTS도 병역의 성역을 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즈음 국회에 출석했던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BTS가 군에 오도록 하되, 연습 시간을 주고 해외에서도 공연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답변으로 에둘러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후 BTS는 2022년 12월 맏형 진을 시작으로 2023년 12월 지민과 정국의 동반 입대까지 멤버 7명 전원이 군 복무 중이다. 병역 의무를 다하는 이들의 모습은 “역시 BTS”라는 찬사를 낳으면서 ‘군백기’가 무색할 정도로 인기를 이어 가고 있다. BTS 팬덤 ‘아미’는 “다녀와야 할 곳이면 다녀오면 되고, 우린 그동안 기다리면 된다”며 오히려 쿨한 반응이다. 병역특례 논란에 소환될 때마다 “BTS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마라”는 경고도 덧붙인다.


지난달 17일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BTS 뷔가 특수임무대(SDT) 대테러복을 입은 모습이 공개됐다. 뷔는 2023년 12월 입대한 후 현재 2군단 쌍용부대 군사경찰 특수임무단에서 복무 중이다. 연합뉴스 지난달 17일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BTS 뷔가 특수임무대(SDT) 대테러복을 입은 모습이 공개됐다. 뷔는 2023년 12월 입대한 후 현재 2군단 쌍용부대 군사경찰 특수임무단에서 복무 중이다. 연합뉴스

∎초저출생에 병력 감소 직격탄

초저출생 세대(2002년 이후 출생)의 군 입대 시기가 도래하면서 병역자원 급감이 본격화했다. 합계출산율이 1.3명 이하일 때 초저출생으로 분류하는데 그 시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게 2002년이다. 현재 유지하고 있는 ‘병력 50만 명’ 선도 1~2년 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군은 병력 50만 명을 유지하려면 매년 22만 명을 징병 또는 모병해야 하는데 올해 20세 남자 인구가 22만 6000명까지 떨어졌고 2039년에는 15만 6000명으로 급감해 병력 40만 명 선도 유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CNN은 지난해 말 ‘한국군은 인구 셈법이라는 새로운 적과 마주했다’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세계 최저 출생을 기록하는 한국이 지정학적 긴장감이 점점 높아지는 서태평앙 지역의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충분한 병력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마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병력 부족은 결국 잉여 병역자원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출발했던 병역특례제도의 개선 필요성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병역특례제도 개선 논의는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징병제의 모병제 전환이나 여성징병제 도입에 대한 논란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기식 병무청장은 최근 국방부, 병무청,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참여하는 TF를 구성하고 병역특례제도 개선 방안을 연내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했다. 연합뉴스 이기식 병무청장은 최근 국방부, 병무청,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참여하는 TF를 구성하고 병역특례제도 개선 방안을 연내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했다. 연합뉴스

∎체육·예술인요원 폐지 가능성

정부는 국방부, 병무청,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병역특례제도 개선 방안을 연내 마련해 공식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이기식 병무청장은 “예술·체육요원을 포함한 보충역(병역특례)제도는 도입 당시와 비교해 시대 환경, 국민 인식, 병역자원 상황 등 측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TF 구성 배경을 설명했다. 전문연구·산업기능요원은 국가 육성 산업 위주로 지원하고 공공보건의사 등 공익 분야는 국민 복지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는 방침인데 예술·체육요원에 대해서는 폐지 가능성을 언급했다. 모병제와 여성징병제는 시기상조라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병역자원 급감 등으로 혁신을 요구받는 병역특례제도는 시대에 맞게 바꿔야 할 때가 됐다. 특히 공정과 형평성 논란의 중심에 선 예술과 스포츠 분야 병역 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국가대표라는 프리미엄을 통해 연봉 상위 1% 안에 드는 부유한 프로 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위해 편법까지 동원하는 현실은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젊은이들에게 박탈감을 준다는 지적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무조건 없애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병역자원을 연계할 정도로 수적으로 많지도 않다. 누군가는 개인의 영광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로 위로받고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보며 대리 만족과 성취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특례 조건은 유지하되 일정 연령대까지 입대를 연기하고 은퇴 후 일정 기간 대체 근무를 공개적으로 하게 하는 방안 등도 거론된다. 체육 선수의 경우 단기 성과에 따른 보상이 아니라 국제 대회 출전 횟수에 비례한 병역 혜택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누적점수제라면 한탕주의나 편법 면제 등에 대한 논란을 완화할 수도 있다. 이왕에 칼을 빼 들었으면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향의 제도 개선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강윤경 논설위원 강윤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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