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종부세, ‘종이호랑이’ 전락하나

김건수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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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부분적 폐지” 감세 시동
사회 양극화·지방 재정 직격탄 우려
여론 수렴 통해 국민 동의 구해야

대통령실이 지난 16일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부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가 또다시 ‘부자 감세’에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종부세는 고가의 부동산에 대한 과세를 통해 사회적 평등을 증진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돈이 상전이 된 자본주의 사회를 그나마 굴러가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판이랄까. 종부세의 의미는 지방 균형발전 측면에서도 각별하다. 세수 전액이 지방 재정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살림살이가 곤궁한 지자체에게는 든든한 생명수에 다름 아니다. 지방소멸의 위기 앞에서 과연 지방정부 지원보다 다주택자 피해 구제가 더 급한 일인가. 종부세를 손질하려면 이를 국민들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주거권네트워크 관계자들이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종부세 폐지·완화를 도모하는 거대 양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거권네트워크 관계자들이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종부세 폐지·완화를 도모하는 거대 양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대통령실 발표 일파만파

종부세는 현재 공시가격 9억 원(1가구 1주택자는 12억 원)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사람에게 부과된다. 대통령실 성태윤 정책실장은 경제활동을 왜곡하면서도 세수 효과는 크지 않은 대표적 세금으로 상속세와 함께 종부세를 꼽았다. 가격안정 효과는 없는 반면 세금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되는 불합리한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재산세가 있는데 종부세까지 부과하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지적도 있다. 종부세 부과에 대한 오랜 저항 논리 중의 하나다.

그렇다고 대통령실이 종부세 전면 폐지를 내세운 것은 아니다. 우선은 초고가 1주택자와 가액 총합이 매우 높은 다주택 보유자에게만 부과하는 방식으로 개편해 보자고 한다. 여기가 끝은 아닐 것이다. 윤 정부는 틈만 나면 종부세와 상속세 등을 놓고 부자 감세를 주장해 왔다. 결국은 다주택자 중과세율도 완화하고 나아가 제도 자체를 완전 폐지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종부세 부담 완화에 대해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일각에서도 지지하는 분위기가 있다.


대통령실이 지난 16일 종합부동산세를 부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의 아파트 단지 모습. 부산일보DB 대통령실이 지난 16일 종합부동산세를 부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의 아파트 단지 모습. 부산일보DB

■ 계층 양극화 막는 장치

일종의 보유세인 종부세는 부동산 가격이 높을수록 여기에 누진적 세율을 적용해 계층 양극화를 막고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2005년부터 시행됐다. 그 이전에는 고가 아파트 세금이 중형 자동차 세금보다 턱없이 낮은 세제의 불합리성이 엄연한 시절이었다. 종부세는 오랜 사회적 진통과 합의 과정 끝에 도입된 것이다. 따라서 종부세 폐지는 ‘공평 과세’라는 원칙을 흔드는 일이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도 법적 정당성을 명확히 한 바 있다. 2021년 종부세 대상자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헌재는 지난달 30일 종부세법이 청구인들의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부동산 가격 안정과 실수요자 보호라는 취지가 정책 목적에 부합한다고 본 것이다.


■ 폐지 땐 지방 재정 직격탄

지난해 종부세 수입은 전년도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2022년 거대 양당이 합의해 종부세를 대폭 깎아준 탓이다. 전년도보다 2조 6068억 원가량 크게 줄어든 4조 9601억 원. 감소 폭이 무려 전체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종부세는 이미 ‘종이호랑이’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종부세 세수는 전액이 지방 재정인 부동산 교부세 재원으로 쓰인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정부가 지방에 내려보내는 부동산 교부세 역시 대폭 삭감됐다. 지방정부 곳곳에서 곡소리가 들린 이유다. 부산 지역 기초지방자치단체도 타격이 컸다. 지난해 부산 중구는 전체 예산 총액 대비 부동산 교부세 비중이 12.1%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는데, 부동산 교부세가 깎인 규모(-4.8%)도 세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부동산 교부세 감액 절대 규모가 가장 큰 지자체는 부산 영도구(-154억 원)였다.

사정이 이러한데 앞으로 종부세를 더 완화하거나 폐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방 재정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살림살이가 빠듯한 지자체에 교부세가 많이 배분받는 방식이라서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지자체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지난 2일 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에 종부세 등 세금 상담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일 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에 종부세 등 세금 상담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 대안 없는 원칙 훼손 안 돼

종부세 납부 대상자는 전체 국민 중 2%가 안 된다. 가구주 1명에 딸린 가족까지 포함해 넓게 잡는다 해도 6% 정도. 이들이 보유한 종부세 납부 기준 공시가격 12억 원의 주택은 시세로는 20억 원 이상을 상회한다. 이렇듯 다주택자·고가주택 보유자가 주로 부담하는 세금이 종부세다. 마치 서민에게 부과되는 세금인 양 호도하는 건 옳지 않다.

종부세 부과의 목적은 뚜렷하다. 조세 형평성 강화, 자산 불평등 완화, 지역 균형발전. 이 원칙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 특히 세수 감소로 지자체 살림살이에 큰 영향을 미칠 경우 이를 막을 대책이 반드시 논의돼야 한다. 이명박 정부도 대규모 감세를 실시했으나 지방소비세·지방소득세 등 세수 보전 대안을 만들어 지방정부의 처지를 도외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윤 정부는 19일 저출생 대책으로 지자체의 부동산 교부세를 활용한다는 구상을 내놨다. 불과 얼마 전 종부세를 전면 개편하는 방향으로 얘기해 놓고는 난데없이 저출생 투자에 돌리겠다고 한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일이다.


■ 여론 수렴해 국민 신뢰 얻어야

일관성 없는 정책은 국민들의 믿음을 얻기 힘들다. 국정을 책임진 집권 세력이 국민적 영향이 큰 세금 문제를 갑자기 툭 던져 놓는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종부세 같은 중요한 정책은 다양한 측면에서 정교하고도 합리적인 준비를 통해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 정부여당도 거대 야당도 당리당략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가 절대 아니다.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리고 여론을 수렴해 동의를 구하는 게 순리요 도리다.




김건수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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